<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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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11)『엄마 목소리에 잠이깼지요 뭐.』 문을 열고 은례가 방으로 들어섰다.
『아니.두분이 잠은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옆에 와 있는 은례를 보며 송씨가 물었다.
『너는 왜 안 자니?』 『걱정돼서요.』 낮게 말하고 나서 은례가 치규를 바라보았다.그 눈길이 묻고 있었다.오빠 소식은 들으셨어요? 그 마음을 읽으며 송씨가 말했다.
『은례야.니 오래비,살아 있단다.』 『네?무슨 소식을 들으셨어요?어디 있대요?』 은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섯 아이를 두었던 집안에 위로 세 아이를 잃고 겨우 둘이 컸다.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라고는 해도 동무처럼 자랐던 오누이였다.은례의 눈길이 치규와 송씨 사이를 오가며 그 얼굴에 쓰여 있는 사연을 부지런히 읽 는다.
치규에게 들었던 말을 전하며,송씨는 고개를 돌리며 눈 밑을 닦아냈다.
『그러니…그게 어디 산 목숨이니.
나라는 무슨 놈의 나라.제 놈 아니면 뭐 찾을 나라 못 찾는다든.』 『엄마.사람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해요.별을 덮고 자고,이슬 맞으며 깨어난다잖아요.제 일신 안 돌보고 큰 일하는 게 어디 아무나 하는 일이에요?』 『얘 좀 봐.네 오래비,둘 아니다 이것아.세상에 잘난 아들 백이면 뭘 하니.새벽에 소죽 끓이고,내 눈 앞에서 마당 쓰는 아들 하나만 있어도 원이없겠다.』 『원,소갈머리라고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치규가 일어섰다.그는 박차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은례가 뒤따라 나가 어두운 마당가에 서 있는 치규 옆으로 갔다.누렁 수캐가 잠에 깨어 은례의 옆을 맴돈다.
조심스레 은례가 말을 꺼냈다.
『아버지도 엄마 저러시는 마음을 이해 못 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너도 이제 애 에미가 되었다만,자식 생각하는 데야 무엇이 다르겠느냐.다 똑같지.그러나 자식이 품에 있어야만 자식이라드냐.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고 장부도 태어났으면 장부가 가야 하는 길이 있는 법이고,내 식솔 내 피붙이도 중요 하다만남자에게는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부모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그 일에 걸리적거려서야 그게 어디 사내라드냐.나는아무 염려 안한다.아들놈 나라에 바칠 수 있다면 춤이라도 추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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