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한국 기대는 금메달 투자는 노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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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64년 도쿄여름올림픽에서의 일이다.
다이빙에 출전했던 한국대표 李弼中선수가 입수직전 놀란 마음에그만 몸을 웅크리고 말았다.머리가 그대로 풀 바닥에 닿을 것 같아서 였다.잠시후 깨달은 것이지만 풀의 물이 서울운동장 풀보다 너무나 맑아 순간적으로 물이 없는 것처럼 보 였기 때문이었다. 단 한번도 이처럼 깨끗한 시설을 갖춘 풀에서 연습할 기회가 없었던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겨울올림픽 출전선수들은 30년전 겪었던 해프닝을 바로이곳 노르웨이에서 또다시 같은 심정으로 경험하고 있다.
한국 알파인스키 간판주자로 겨울체전 시즌만 되면 적어도 3~4관왕의 타이틀을 지니고 화려하게 매스컴의 각광을 받는 許勝旭(22.연세대)은 슬로프가 엄청나게 험한 활강경기를 포기한데 이어 슈퍼대회전 경기는 참가가 좌절됐다.그러나 아 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다.국내에는 활강코스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한국은 48년 스위스의 생모리츠에서 열린 제5회 겨울올림픽부터 참가했지만 활강에 첫 성공하기는 80년 레이크플래시드대회가처음이다.
당시 洪仁基선수가 활강도중 폴을 놓치고도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이 미국 ABC-TV에 생생히 방영돼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다고 한다.
그때나 이때나 국내의 겨울스포츠 수준은 사실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아시아권에도 유리한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지난 92알베르빌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오히려 국민들의 기대감만 부풀려 놓았을 뿐이다.스피드스케이팅을 위한 실내링크는 커녕 그나마 규모를 갖춘 국내유일 의 태릉옥외국제빙상장 또한 강하고 거친 빙질과 선수부상 방지를 위한 안전시설 미비로 선수들의 기피대상이 되는등 열악한 환경은 그대로인데 기대감만 여름올림픽 수준으로 올라갔다고나 할까.크로스컨트리에 출전하는 노르웨이 선수들의 경우 일 년중 3백일을 눈밭을 헤매며 보낸다고 한다.역시 한국의 간판 朴炳哲(단국대)이 하위권을 맴도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의 우체부들의 실력이 한국선수들보다 월등하다는 국내관계자들의 탄식에 웃어야만 할까.
복권당첨을 바라는 요행심보다 투자만큼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정직한 마음이 요구되는 한국겨울스포츠의 현 시점이다.
[릴레함메르=劉尙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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