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항운노조 ‘클로즈드 숍’ 사라졌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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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항운노조 조합원들이 부두에서 화물 선적 작업을 하고 있다. 클로즈드 숍 폐지로 회사가 뽑은 근로자도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중앙포토]

부산항과 평택항에 이어 인천항이 101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12일 하역근로자를 공개 채용하며 주요 항만의 항운노조 클로즈드 숍이 사실상 사라졌다. 클로즈드 숍의 의미와 내용 등에 대해 공부한다.

◆클로즈드 숍이란=노동조합 조직형태는 가입·탈퇴 자유를 기준으로 클로즈드 숍, 유니언 숍, 오픈 숍으로 나뉜다. 클로즈드 숍은 근로자가 직장을 얻기 전 반드시 조합에 가입하는 제도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만 일할 수 있고 회사는 조합원만 고용한다. 조합에서 탈퇴·제명된 사람은 자동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우리나라에선 부두의 하역작업 등을 담당하는 항운노조가 유일했다. 따라서 하역회사는 부두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못했으며, 반드시 항운노조를 통해야 했다.

유니언 숍은 채용할 땐 조합원일 필요가 없지만 일단 들어오면 반드시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 사용자는 자유롭게 채용하나 계약 후 근로자는 반드시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 대부분 노조가 택하고 있는 오픈 숍의 경우 근로자는 자유의사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기업도 조합 가입 여부에 따라 채용을 결정하지 않는다. 가장 자유로운 형태지만 노조 입장에서 봤을 땐 결속력이 떨어진다.

◆클로즈드 숍과 항운노조의 역사=클로즈드 숍은 과거 항만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기여했다. 작업량이 들쭉날쭉하던 당시는 하역업체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따랐다. 따라서 하역회사는 필요에 따라 노조로부터 노동력을 공급받았다. 그러나 무역 활성화로 물동량이 늘고 하역설비가 자동화·기계화해 필요 인력이 줄며 클로즈드 숍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가 됐다.

따라서 영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는 1980년대 말부터 경쟁력 강화를 위해 클로즈드 숍 폐지에 나섰다. 영국 대처 총리는 89년 항만 노무법을 제정, 기존 항운노조의 근로자 공급 독점권을 없앴다. 노동자들은 이에 반대해 20일에 걸쳐 84개 항구에서 파업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손들었다. 프랑스는 92년 항만 개혁법으로 클로즈드 숍 체제를 없앴는데, 노조는 60여 일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호주는 군대까지 동원하는 홍역을 앓기도 했다. 아시아권에선 대만이 선도적으로 97년 항만 민영화를 추진하며 노무 공급 독점권을 전면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큰 대립 없이 노사정 합의로 클로즈드 숍을 없앴다. 첫 항운노조는 1898년 함북 성진에서 47명의 부두 노동자가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항만시설이 기계화되며 정부는 클로즈드 숍 폐지를 꾸준히 추진했으나 노조와 견해 차가 커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5년 3월, 항운노조 비리 사건이 터지며 상황이 변했다. 상납 등 조합의 채용 비리가 세상에 공개되며 클로즈드 숍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에 힘입은 정부는 부산·평택·인천 등을 중심으로 개편에 나섰다. 이에 따라 부산항은 올 1월부터, 평택항은 7월부터 클로즈드 숍을 폐지하고 하역회사가 근로자를 뽑는 상용화 체제로 전환했다. 인력 공개 채용이 마무리되면 인천항도 11월 상용화 체제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규모가 작은 항만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클로즈드 숍이 해체됐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정부는 클로즈드 숍 폐지로 항만의 대외 신인도 향상과 동북아물류 중심 국가 실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인력 감축에 따른 비용이 절감된다. 또 절감된 비용이 항만 현대화에 투입돼 물류 효율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클로즈드 숍 폐지 후 영국은 52%, 호주 50%의 인력이 줄었다. 인건비 절감은 항만시설 확충과 현대화로 이어져, 항만 내 선박체류 시간이 최소 14%(대만)에서 최대 100%(호주)까지 감소했다. 사회적인 공감대 속에 노·사·정의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도 사회적 의의가 크다.

장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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