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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순아지매 6천회 정운경화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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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칸의 사회면」 구수한 웃음 신랄한 풍자/살벌했던 시절 한칸 빈채 나가기도/매일 상큼한 소재찾기 피말린 20년/독자격려와 추궁 왈순네 항상 긴장/모델은 월선이 아줌마… 가정부서 주부로 역할 바뀌어
중앙일보의 인기 시사만화가 정운경화백의 「왈순아지매」가 지난 18일로 6천회를 맞았다. 지난 74년 12월26일 첫회가 나간 「왈순아지매」는 20년간 유신과 5,6공의 암울했던 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재치있는 해악과 통렬한 풍자로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 독자들의 깊은 사랑을 받아왔다. 정 화백의 「왈순아지매」에 얽힌 이야기와 몇몇 만화 및 동료 시사만화가의 축하컷을 싣는다.
『지난 20년동안 저 대신 왈순아지매가 세상을 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중앙일보 사회면의 붙박이 인기만화 「왈순아지매」의 작가 정운경화백(60)은 왈순아지매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74년 12월26일부터 유머와 위트로서 세상사를 요리해온 정 화백의 왈순아지매를 6천회 돌파기록은 한국신문 만화사상 유례없는 대기록이다. 말이 6천회지 20년 가까이 날마다 새로운 소재로 정치·경제·사회의 온갖 세태를 담아내는 일은 정 화백에게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것과도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사만화를 그리는 것은 벽돌쌓기와는 달리 매일매일 빈종이 한장을 앞에 놓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입니다.』
한번 쓱 훑어보는 짧은 순간에 독자로 하여금 세상사를 깜박 잊고 웃음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견디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안절부절 못한채 마치 피가 졸아드는 듯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24시간이 작업시간」이라는 정 화백의 하루일과는 4컷 만화에 담을 아이디어 짜내는 일로 꽉 채워져 있다. 아침 7시 출근해 조간신문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일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계속되는게 보통이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머리말에 종이와 펜을 놔누고 얕은 잠속에서 중간 중간 일어나 꿈속 일까지 메모할 정도다.
다음날 그릴 아디이어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퇴근하면서 신문사가 있는 서소문에서 집이 있는 여의도까지 무작정 걷기도 한다.
걸어가면서 사람들 얼굴도 유심히 보고 자동차물결도 지켜보면서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의 파편들을 주워모으는데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서서 급한대로 손바닥에라도 적어놓는게 습관이 됐다.
정 화백의 이같은 아이디어 짜내기를 통해 포장되는 왈순아지매의 웃음은 무엇보다 서민들에게 친근감을 안겨주는 것이 특징이다.
퉁퉁한 허리에 대충 넘긴 머리에서 세련된 도시풍의 멋은 느낄 수 없지만 어디서나 흔히 마주칠 것 같은 푸근한 이웃 아주머니의 느낌을 주는게 왈순아지매의 변치 않는 매력이다.
언제봐도 구수한 매력을 지난 왈순아지매는 정 화백의 고심끝에 찾아낸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캐럭터다. 65년 여성잡지 『여원』에서 가정만화를 청탁받고 2개월간 서울시내를 헤매던 정 화백은 어느날 우연히 사촌형수에게 놀러왔던 한 경상도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왈순아지매의 이미지를 찾아냈다.
억세면서도 정이 깊고 또한 사리가 분명한게 정 화백이 그리는 왈순아지매의 성격이다. 왈순아지매의 모델이 된 월선이란 이름의 아주머니는 지금은 작고했지만 자신이 모델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왈순아지매의 독자가 됐다.
『왈순아지매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태변화에 따라 왈순아지매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왈순아지매의 소심하면서 평범한 회사원인 가장 밑에서 댓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처음 등장할 때 왈순아지매의 배역은 가정부였습니다.』
왈순아지매의 가정부 배역은 70년대가 지나면서 가정부가 점차 사라져감에 따라 지금의 주부역할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오래된 독자들은 요즘도 정 화백에게 전화를 걸어 『가정부가 부인자리를 차지했다』며 항의하기도 한다고 한다.
정 화백은 사회의 청량제같은 「왈순아지매」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유신과 5공 같이 살벌했던 시절에는 『라면 먹으러 간다』며 부지기수로 「남산」에 불려갔다.
또 기관원들이 신문사내에 상주했던 그 시절에는 네칸 만화중 한칸이 빈채로 나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고,내용이 문제가 될듯 싶으면 일부러 마감시간 늦게 슬그머니 원고를 넘기고 뒷문으로 신문사를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신문과의 경쟁도 시사만화가를 압박하는 스트레스지만 독자들의 격려나 날카로운 추궁 역시 『왈순아지매를 사회에 거울로서 항상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일깨워준 지주였다』고 정 화백은 말한다. 시사만화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지금도 날마다 샘솟는 아이디어를 퍼올리는 정 화백이 만화에 입문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동래 정씨 석문공파 종가에서 태어난 정 화백은 만화가의 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대구 피난시절 『코주부』 작가 김용환씨를 만나 만화의 기본기를 익혔다.
대학시절 학비를 거의 만화고료로 충당했던 정 화백은 30대 독자라면 당연히 보고 자랐을 『지진돌이』 『또복이』 등 아동만화에서부터 가정만화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왔다.
『왈순아지매는 이제 30세쯤 되는데 미술을 공부한 딸에게 대를 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 화백의 은근한 기대와는 달리 근래 십수년간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날마다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파묻혀 사는 정 화백의 모습을 보고는 딸이 한마디로 『그런 일은 싫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정 화백이 말하는 시사만화의 요체는 「재미」다. 정 화백은 일상에서는 남을 잘 웃기지 못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책을 섭렵하면서 웃음을 캐낸다. 30년 가까이 왈순아지매와 살아온 정 화백은 요즘 헬스클럽을 찾아 땀을 빼는 일과 가끔 산에 오르는 일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심고 있다.<윤철규기자>
◎시사만화 최고봉 「왈순아지매」 20년/민심 헤아려 세태 대변한 「청량제」/어수룩한듯 세련된 해학 통쾌
「왈순아지매」의 만화세계는 촌철살인의 풍자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감싸안는 일류의 해학으로 정운경화백 독보의 경지를 보여준다.
매일 독자에게 배달되는 이 4단컷의 마술은 건조하고 살벌하기조차한 신문사회면을 중화하는 오아시스처럼 독자에게 여운 긴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왈순아지매 만화의 미덕은 그 만화세계가 시대의 일상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아지매와 그 주변인물들이 이 각박한 세상에 서민들의 자화상이자 영원한 이웃이며 그들의 대변인인데 있다.
말하자면 시사만화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셈인데 이 리얼리즘은 세태의 정곡을 찌르는 소재는 물론 정 화백 특유의 충실한 배경묘사에 의한 입체적 구도,살아 숨쉬는 대화 구사에 힘입고 있다.
어쨌든 소시민이자 샐러리맨인 가장의 박봉을 쪼개 가계를 꾸리느라 왈순아지매가 손놓고 노는 모습을 우리는 본 기억이 없다.
가장이 좀 시니컬하고 가끔 약은 면도 보이는 반면 이 억척스런 왈순아지매는 단순 명쾌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성격이다.
가장은 체증걸린 고속도로에서 갓길 운행도 슬그머니하고 선거철이면 대형지갑을 준비,한몫 챙길 마음도 동하는 속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줘 아지매의 혀를 차게 한다.
반면 아지매는 전국구대표·지역구대표를 자처하며 침입한 떼강도에게 아파트 당첨순위나 은행의 번호표처럼 순위표를 나눠주고 순서대로 털어가라는 배포를 보이기도 하며 김장철에 들어온 강도에게는 무 썰던 식칼을 쳐들어 쫓아내기도 한다.
이같은 가장을 통한 소시민적 풍자와 아지매의 우직한 정직성이 함께 잘 어울린 것이 왈순아지매 만화의 친근한 매력이다.
그러면서도 죄가 뭔지도 모르는 5,6공 인사 집의 개가 웃는다든가,이합집산 뛰어다니느라 벗겨져 팽개쳐진 정치인의 구두끼리 가가대소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의 통렬한 야유로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한다.<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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