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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나라당 경선 앞으로의 운명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호 04면

오종택 기자

“후보가 연설하는데 이런 식으로 야유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다니….”

깊은 ‘內戰의 상처’ 한 달 안에 치유해야

17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합동연설회를 지켜보던 한 당직자가 뱉어낸 한탄이다. 단상에 오른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위장전입ㆍ위증교사를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이 후보의 지지자들이 “우∼” 하며 함성을 지른 데 대한 걱정이다.

경선 투표(19일)를 이틀 앞두고 열린 한나라당의 마지막 공식 선거전에서는 두 후보 측의 감정의 골이 뚜렷이 드러났다.

먼저 연단에 선 이 후보의 연설을 무표정하게 듣고 있던 박 후보는 이 후보가 “BBK라고요? 도곡동 땅이라고요? 모두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외치자 씩 웃었다. 비웃음인 듯했다.

곧이어 단상에 오른 박 후보는 “도곡동 땅이 누구 땅이냐? 검찰은 다 알고 있습니다. 주가 조작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BBK는 누구 회사인가”라며 이 후보를 공격했다. 불과 5m 거리에 있는 박 후보가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비난에 얼굴이 굳어진 이 후보는 옆자리의 원희룡 후보에게 몸을 기울여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행사가 끝난 뒤 원 후보에게 대화 내용을 묻자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경선 전날인 18일에도 양측은 “금품을 살포했다” “선거인단 불법 수송을 계획했다”며 난타전을 벌였다. 경선 이후 이ㆍ박 후보가 각자의 길을 갈 것이라는 당내 우려가 나오기에 충분했다.

20일 개표 결과가 발표되면 당에선 즉시 경선 상처 치유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당장 후보들부터 경선 이후의 불길한 시나리오를 언급한다.

이 후보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나를 사퇴하라고까지 하는 것은 경선 이후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며 “더욱이 2002년 이회창 후보가 출마했을 때 (박 후보가) 탈당을 해서 9개월 만에, 선거 한 달 전에 다시 입당을 해서 힘을 모았다”고 말했다. ‘패자 탈당론’이다. 박 후보는 17일 연설에서 “제2의 김대업이다, 정치공작이다, 아무리 외쳐봤자 (이 후보는) 서류 한 장만 나오면 어쩔 수 없다”고 강조했다. ‘후보 낙마론’이다.

당 내부에선 패배한 캠프 인사들이 경선 승자를 돕지 않고 대선 후보가 여권의 공격으로 무너지거나 낮은 지지율로 힘이 빠지기를 기다릴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된다. 후보 사퇴 시 전당대회를 열어 새 후보 선출에 나설 가능성을 노린다는 것이다. 당권을 장악해 2008년 4월 총선을 준비할 수도 있다.

“1년 가까이 압도해온 후보가 터무니없는 네거티브에 당한 걸 어떻게 승복하느냐”는 이 후보 측 인사의 주장이나, “언제 자격을 잃을지 모르는 후보를 어떻게 돕느냐”는 박 후보 측 관계자의 말은 이런 예상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양측이 화합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더 많다. 우선 두 후보 측이 패자를 포용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 후보로서는 박 후보의 인기가 탐날 수밖에 없고, 박 후보에겐 이 후보의 수도권 기반이 절실하다. 이 후보는 참모들에게 최근 “어떻게 하면 경선 이후에 박 후보와 같이 갈 수 있을까”라는 견해를 물었다고 한다.

박 후보 캠프에선 경선 승리 시 이 후보 진영 인사들에게 선대위 요직을 양보하고 현 참모들을 2선으로 후퇴케 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당 지도부는 주요 당직 인선이 화합의 촉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원내대표ㆍ정책위의장을 새로 뽑아야 하며 최고위원 두 명도 공석이다. 시ㆍ도당 위원장 선거도 해야 한다. 후보와 상의해 경선 패배 진영에 당직을 배려하고 선대위의 중책을 맡기면 자연스레 갈등은 해소 국면에 들어서리라는 계산이다.

패자 측이 독자 생존을 모색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갈등 봉합 가능성을 높여준다. 달라진 선거법으로 경선 탈락자의 ‘탈당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정병국 의원은 “지금은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66세인 이 후보는 경선에서 지면 정치에서 한 발 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독자 세력화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셈이다. 박 후보의 기반인 영남은 총선에서 ‘물갈이 공천’을 해도 당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승자가 손을 내밀면 뿌리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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