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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梨大 안 나온 여자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호 03면

도대체 이 소동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다음 타자는 누구일까.
‘신정아 사태’로 불거진 가짜 학력 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신망과 인기를 누려온 유명인들이 줄줄이 학력 위조자로 ‘소환’되면서 대중의 허탈감도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주의와 함께 도덕적 해이의 심각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일제히 유명인들의 ‘학력 털기’에 나섰고, 확인되지 않는 괴담과 의혹들이 흉흉하다.

가짜 학력 파문 연극배우 윤석화

이번 주에는 중견 연극인 윤석화씨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화여대 자퇴라고 말해 왔으나 사실은 다닌 적이 없다는 고백이다. 그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철없는 거짓말이 30년 동안 양심의 발목을 잡았다”고 밝히고 홍콩으로 떠났다.

1975년 민중극단의 ‘꿀맛’으로 데뷔한 윤씨는 ‘신의 아그네스’ ‘명성황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히트작에 출연했다. 연극배우로는 드물게도 자기 이름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스타였다. 공연 전문 월간지 ‘객석’ 발행인이자 아이를 둘씩이나 공개 입양하는 열린 행보로, 지적인 문화인사라는 명망이 높았다.

윤씨는 고백 형식으로 학력 위조를 밝혔으나, 그 시점이 언론 취재가 막바지에 이른 때라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여론의 압박에 선수 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특히 그가 최근까지 인터뷰에서 이대 출신임을 강조했고, 동문 자격으로 이대 강의와 행사에 수차례 참여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은 배가됐다.

그간 윤씨가 지성파 이미지를 쌓는 데 이대 타이틀이 적잖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라기보다 ‘학벌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린 것이라는 따가운 목소리도 이어진다.
윤씨 사태로 문화예술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술·방송·공연·건축 등 전방위에서 이어지는 학력 위조 파문으로 문화예술계가 가짜 학력의 온상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원로 연극과 교수는 “문화예술계는 논문이나 학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학위나 학력을 검증할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의 권력이 현장보다 대학에 집중되는 기현상이 교수사회에 들어가려는 과도한 욕망을 낳고, 결국 가짜학력의 유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사태의 본질은, 간판 없이는 대접받기 힘든 학벌 숭상주의라는 ‘괴물’이지만 말이다.
윤씨 사태 이후 세간에는 영화 ‘타짜’의 대사가 유행이다. 도박 설계사 정 마담(김혜수)이 단속 나온 경찰의 손을 뿌리치며 “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하는 부분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가볍게 웃었지만 학벌주의의 깊은 골을 확인하는 요즘 쉽게 넘길 수 없는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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