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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만난 ‘레이디 채털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호 25면

많은 사람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영화를 어떤 사람은 울면서 본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가장 최근에는 ‘레이디 채털리’를 본 사진작가 이버들이의 반응이 그랬다.

미스 허니의 노마딕 라이프

“저 많이 울었어요.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모든 게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랬다. 야하다기보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우아한 영화였다. 특히 내게는 채털리 부인이 숲으로 산책 나갈 때 신었던 구두가 아름다웠고, 아무런 방비도 없이 빗속을 뛰어다니는 알몸들이 아름다웠고, 욕망의 떨림이 아니라 섬세한 친근감으로 여자의 몸을 꽃으로 장식하는 산지기의 거친 손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이 영화를 마침 파리에서 봤다. 그 특유의 자유분방한 공기와 섹스에 대한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도시라는 점에서 파리는 ‘채털리 부인’을 만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장소였다. 심지어 이곳은 그가 대통령이라 해도 타인의 섹스 스캔들에 대해 조금도 문제 삼지 않는 도시다. 게다가 그 감독이 프랑스 여자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됐다.

역시 달랐다. 파스칼 페랑 감독이 재창조한 ‘콘스탄스’는 예전의 채털리 부인들과 달리 ‘관능의 여신’이라기보다 ‘우아한 산책자’의 모습이었다. 보통 파리만큼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은 도시가 없다고 말하는데 지금의 파리는 나로서는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 않은 얘기다. 파리지엔느만큼 산책자들에게 특별한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없긴 하지만. 그들에게 산책자는 아무런 목적 없이 하루 종일 거리를 어슬렁거릴 수 있는 사람들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시간’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지상 최고의 개인주의자들다운 발상!

아무튼 새로운 ‘콘스탄스’는 텅 빈 결혼생활과 지식인 계급의 공허한 ‘정신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숲으로 달아난 산책자다. 그런데 그 산책자의 옷이나 구두, 머리 모양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얼핏 수수한 듯 보이지만 완벽하게 계산된 파리지엔느 특유의 일상적 우아함이 의상은 물론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 녹아 있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작가 레이먼드 화이트의 책에서 읽었던 말이 떠오른다. “프랑스 여자는 집을 나서는 순간 무대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말처럼 ‘산책자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구한다’. ‘콘스탄스’는 산책길에서 살아 있는 숲의 생명성과 살아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원작과 달리 영화가 ‘콘스탄스’와 산지기 사이의 의미심장한 대화들(특히 산지기가 그의 계급과 달리 상당히 지적인 남자라는 걸 알 수 있는 대화)을 지워 버리고 침묵 속에서 ‘육체’에만 집중한 이유. 그건 감독과 배우가 지식보다 인체를 찬양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프랑스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작과 달리 산지기의 몸이 호리호리하게 날씬하지 않은 이유는? 그건 그들이 다이어트와 스포츠 미학으로 길들일 수 없는 자연의 방식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다.

신경제자본주의는 인간을 모두 조그맣고 소심하고 옹졸한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모두 자기계발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프랑스적으로 재탄생한 채털리 부인이 나타나 그런 당신을 좀 더 원시적인 공간으로 데려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옷을 벗고 당신의 몸을 보세요. 거기 나 있는 털이 아름답군요. 기억하세요. 당신의 몸은 더 발랄하고 아름다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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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허니’ 김경씨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인터뷰어로 개성 넘치는 책『뷰티풀 몬스터』『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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