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여섯 왕비와의 ‘이혼전쟁’, 그 내막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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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결혼은 협상이었고 이혼은 전쟁이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 동맹을 위해 두 살배기 소녀가 혼인 시장에 버젓이 나왔고, 지참금 거래는 무역협상만큼이나 신경전을 벌였다. 왕비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정파간 암투가 한 여자의 일생을 만신창이로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도, 버리기에도 왕실과 교황의 집요한 간섭에 맞섰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국 튜더 왕조의 헨리 8세(1491년~1547년) 시대 왕비들을 다룬 역사서다. 대상은 자그마치 여섯 명이다. 지금으로 쳐도 연예인 스캔들을 뛰어넘는다. 단박에 호기심이 든다. 왕은 무슨 곡절이 있어 첩도 아닌 왕비들을 자꾸 갈아치웠을까.

왕의 ‘결혼과 이혼’ 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중세 궁정연애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단 국익이 우선했다. 정치·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나라에서 대상을 찾았다. 첫 번째 왕비 카탈리나는 프랑스를 견제하려 에스파냐에서 데려왔다. 네 번째 왕비 안네는 독일 클레브스 출신으로 얼굴도 안 보고 정혼했다. 협상으로 얻은 부인들에겐 싫증도 금세 냈다. 때맞춰 왕비의 시녀인 앤 불린(두 번째)이나 캐서린 하워드(다섯 번째)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왕이 순수한 사랑에 빠진 걸까. 왕비가 되고 싶은 그녀들과, 왕의 재혼을 성사시켜 주도권을 잡으려는 권력층의 보이지 않는 거래는 늘 존재했다.

새 왕비를 들일 때는 진통이 따랐다. 첫 번째 부인과는 무려 7년이 걸렸다. 죽은 형의 아내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무효였다는 승낙을 교황으로 받지 못한 채 지리하게 시간이 흘렀다. 결국 그는 국교를 바꾸는 최후의 카드까지 내민다. 외도를 눈감아주지 않고 악악대는 앤에겐 정체불명의 사내들과 간통했다는 죄명을 씌워 단두대에 올렸다. 차라리 제인 시모어(세 번째)처럼 출산 뒤 산욕열로 숨지거나, 안네처럼 군말 없이 물러나 재산이나 두둑히 챙기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혼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따로 있었다. 새 왕비를 들여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헤어지길 거부하는 왕비의 입을 틀어막기에 그만한 것은 없었다.

작가는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종속적인 결혼제도 속에서도 개성 넘치는 그녀들을 면면히 살핀다. 또 예식·합방 등 혼인과 관련된 당대 왕정문화를 세세하게 다뤄 읽는 잔재미를 더한다. 마치 대하소설 같은 방대한 이야기지만, 흥미진진한 사건구성과 가벼운 문체 덕에 연애소설처럼 매끄럽게 읽힌다. 영국의 시오노 나나미라는 호평이 그냥 나온 게 아닌 듯 싶다.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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