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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성의 값(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실꿴 바늘이 담긴 바늘쌈을 치마끈속에 넣거나 작은 칼이 담긴 칼집을 차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다. 여아가 일곱살에 이르게 되면 어머니는 이런 물건들을 준비해 몸에 지니게 하고 비상시의 사용방법을 가르쳤다. 바늘은 입고 있는 옷에 이상이 생겼을 때 사용하도록 한 것이지만 장도는 몸을 더럽히게 될 위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사용하게 하기 위한 비상무기였다. 처녀티가 나면 치마의 허리띠를 길게 만들어 입히거나 허리띠처럼 생긴 별도의 띠를 만들어 옷고름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게 한 것도 장식품의 기능과 함께 비상시 스스로 목을 매 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여성이 정조 혹은 순결을 목숨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못된 남성들에게 몸을 더럽힌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의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며,결혼하기까지 처녀성을 간직하는 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의무였다. 결혼하고 나서 신부가 이미 몸을 버린 것으로 밝혀졌을 때는 신랑쪽에서 그 결혼을 무효화시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이르러 구미에서 몰아닥친 성개방 풍조는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정조를 차츰 평가절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정교육과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처녀성을 간직하는게 오히려 짐스럽고,심지어 수치라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으니 시대가 변해도 이만저만 변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전한 가치관으로는 여성,특히 미혼여성에게 있어서 순결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며,처녀성을 간직하는 것이 목숨과 맞바꿀 만큼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상당수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보면 1955년 그 유명한 박인수사건 1심에서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고 한 판결은 다른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처녀성을 잃는 것이 목숨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정조는 법에 의해 보호받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자궁암 검사를 받던중 처녀막 상실을 둘러싼 법정공방은 의학적 입장이야 어떻든 그 판결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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