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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인간 복덕방 조영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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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허허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조영남’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것도 가식이잖아. 있는 그대로 찍어” 라며 그는 손사래를 쳤다. 어쭙잖게 스스로를 꾸미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조영남은 그저 조영남’으로 세상에 비치길 바라는 게다.

말 그대로 ‘조영남 미스터리’ 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은 모조리 다 그의 친구라고 하니까요. 그것도 정계·학계·문화계,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성북동에서 열린 조씨의 저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출판기념회에는 손학규·정동영 등 대선주자와 정대철 열린우리당 전 고문, 박영선 의원 등이 참석했고요. 도올 김용옥, 신화학자 이윤기, 대한성공회 김성수 대주교, 디자이너 앙드레 김도 다 ‘조영남의 친구’를 자처한답니다. 참 궁금했습니다. 키 작고, 못 생기고, 두 번 이혼한 데다 환갑 넘은 나이에 가끔 대형 사고까지 치는 괴짜 가수 주변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지요. 이번 주 week&은 ‘조영남 미스터리’를 파헤쳤습니다.

글=홍주연 기자 <jdrea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조영남(62)의 표현을 빌리자면 ‘웅장한 빌라’ 그 자체다. 그의 청담동 집 말이다. 연예인 집 중 공시지가 1위답게 외관부터 화려하다. 그런데 웅장한 집의 대문을 열고 나온 조영남은 영 실망스럽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허름한 면바지 차림. 생각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들어 보인다. 트레이드마크인 뿔테 안경마저 벗었으니 길거리서 만나면 딱 복덕방 영감님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그는 마침 17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미술쇼’ 촬영팀과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보아하니 기자가 먹을 몫은 없는 것 같은데 조영남은 의자를 바짝 당겨 자기 옆에 놓는다. “당신은 여기 앉아서 탕수육과 군만두를 박살내면 돼. 이 짬뽕, 내가 젓가락 안 댄 건데 먹을래?” 대답도 듣기 전에 자신이 먹던 짬뽕을 척척 덜어 턱 하니 앞에 놓는다. 이 사람, 1분 전에 만난 것 맞나? 처음 보는 사람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는 재주. 그것이 바로 조영남의 기술이다.

"이게 다 내 사람이야." 친구들과 찍은 사진으로 만든 미술작품 '인물이 있는 풍경' 위에서 즐거워하는 '환갑 어린이'.

오랜 친구들 "얘도 넣어야 되고 쟤도 넣어야 되고.” 그의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오는 이름을 다 넣을 수 없어 week&은 ‘지면 사정상’을 이유로 분야별로 몇몇만을 싣는다.

정계 - 김대중, 정대철, 손학규, 김상현, 박관용, 김덕규, 조홍규, 정동영, 김한길, 전여옥, 정진석

쎄씨봉 멤버 - 이장희, 이상벽, 김민기, 박상규, 송창식, 윤형주, 이두식, 정홍택, 이백천

학계 - 김용옥, 이윤기, 정운찬, 오강남, 김종량, 박재규, 김상일, 장영희

‘청담 중학’ 모임 - 최윤희, 유인경, 조우석 (‘청담 중학’은 청담동에서 만나 중학생처럼 살자는 취지의 모임)

문학계 - 조정래, 최인호, 성석제, 김지하, 김홍신, 황석영, 마종기, 김남조

미술계 - 천경자, 권옥연, 김흥수, 고 백남준, 강익중, 윤명로, 김종학, 박명자, 표미선, 박경미, 이상남, 변종건, 김점선

연예계 - 이경실, 이성미, 최유라, 임백천, 배철수, 주병진, 이미자, 패티김

종교계 - 김수환, 김성수, 김장환, 빌리 그레이엄

기타 인맥 - 자니윤, 앙드레 김, 제프리 존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존 덴버, 오태석, 정하연

조영남의 사람

”참 신기해. 나랑 친한 놈들은 전부 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어떨 땐 내가 다 무서울 정도라니깐.” 조영남의 인맥은 화려하다.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사람들 중 상당수를 친구로 두고 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을 가려 사귀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알 땐 평범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출세하더라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발언이다.

 그중 하나가 대한성공회 김성수 대주교다. “내가 윤여정이랑 어울려 다닐 때 말야. 24살이었나. 그때 이상한 신부랑 친했어. 이건 뭐, 험한 말도 잘하고 기도할 때도 건들건들…. 어느 날 보니 그 사람이 TV에 나오더라고.” 그 ‘이상한 신부’가 김성수 대주교다. 김한길 의원이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돌아와 조영남 집에 가장 먼저 갔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때 김 의원이 함께 가사를 쓴 노래가 조영남의 유일한 히트곡 ‘화개장터’다. “김한길·김홍신·김종찬(방송인) 그리고 조영남, 이렇게 ‘사총사’였어. 나는 윤여정하고 이혼한 뒤 위자료로 전 재산 날리고 개털, 나머지도 다 개털, 김홍신이 그나마 제일 유명했을걸.”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들도 국회의원에, 장관에 승승장구했다. 손학규·정대철 의원,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과도 십 년 넘게 알았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정 전 의장이 방송국에 다닐 때부터 친했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와는 80년대 초에 교분을 쌓았으며, 작가 최인호는 대학 시절 친구다. 그 면면을 듣고 있자니 그의 사람 보는 눈은 신기(神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조영남은 위 아래 20년 나이 차와 대부분 ‘형, 동생’으로 지낸다. 그것도 대부분 초면에 말을 튼다. 신화학자 이윤기와의 인연도 그렇다. 2001년 종교학자 오강남의 소개로 조영남이 이윤기의 경기도 양평 집에 찾아갔을 때다. “마당에서 밤 삶은 것만 한 시간 정도 까먹었지. 그런데 갑자기 이윤기가 사람들 앞에서 ‘제가 조영남 선생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고 말하더라고. 나하고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말이야.” 실제 이윤기는 조영남보다 두 살 어리다. 그래서 조영남이 아이디어를 냈다. 사석에서는 이윤기가 조영남을 형으로 부르고, 남 앞에서는 조영남이 이윤기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말이다. “서로 공평하고 좋잖아.” 이렇게 말하고는 ‘껄껄껄’ 웃는다.

 그에게 형·동생 사이의 범위는 넓다. ‘양은이파’ 조양은과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지인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조양은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한참을 애꿎은 술만 마시다 조영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로 잘 모르고 술 마시려니 서먹하다. 이럴 거면 마시지 말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조양은이 말했다. “형님, 제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는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어떻게든 만났다”고 말했다. 시인 김지하는 가수 김민기에게서 소개받았고, 소설가 황석영은 ‘행복전도사’ 최윤희를 통해 알게 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김 추기경의 생일잔치에 축가를 불러주며 인연을 맺었다. 그런데 천하의 조영남도 못 만난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사학자 함석헌이다. 80년대 후반 조영남은 미국에서 연세대 교수 출신 정치인 김동길에게 함석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교수가 한국 가서 소개해 준다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 함 선생은 돌아가셨더라고.”

조영남의 매력

조영남은 의외로 평범하다. ‘대한민국 마당발’이지만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없다. 식성 또한 소박하다. 한강이 180도로 보이는 고급 빌라에 살면서도 여름엔 국수, 겨울엔 내내 떡국만 먹는다. 하지만 조영남 자신도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 보는 눈이다. “본능이지. 만나는 순간 ‘내 패밀리가 될 사람이구나’ 딱 알아.” 목소리, 특히 노래를 들으면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노래가 뭐야. ‘감동 비즈니스’ 아냐. 사람을 감동시켜 돈을 버는 것. 그래서 사람이 최대의 관심사가 됐어.” 한눈에 상대가 마음에 들어도 먼저 연락하는 일은 별로 없다. ‘조영남이 0순위든 나중 순위든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연락 오는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를 ‘무겁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칭찬한다. 상대에게 집중하다 보면 ‘왜 이런 좋은 면을 남들이 모르나’ 싶단다.

 그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사람 사귈 때 상대의 나이나 지위는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조영남을 만날 때도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20대 여대생부터 60대 사업가까지, 직업과 나이도 다양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그 역시 인간관계의 60~70%가 여성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젊은 여친(여자친구)과 영화 보고 수다 떠는 것”이라는 그는 “젊고 예쁘고 착하고 말 통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며 소리 내어 웃는다. 여자든 남자든 사람을 상대할 때는 공통된 원칙이 있다.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부녀관계’라고 칭하는 딸(18)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고3인 딸은 알려진 대로 다섯 살 때 조영남이 직접 입양했다.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인생을 존중하는 거야. 누구랑 만나서 뭐하든 서로 간섭 안 해. 그런데 우리 딸,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안 치고 잘 자랐어. 너무 멋있고 너무 예뻐.”

 지인들이 꼽는 그의 장점은 다양하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청탁을 하지 않으며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돈은 반드시 조영남 본인이 내며 ▶정치·미술·종교 등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는 것 등이다. 특히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달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노래까지 불렀다. 도올 김용옥과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도 평소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비결은 조영남의 솔직함에 있다. 인터뷰 중에도 조영남은 배를 보이며 티셔츠로 얼굴을 닦고, 파자마를 허벅지까지 접어 올린 뒤 그림을 그렸다.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손으로 피자를 먹기도 했다. 확실히 그는 여느 60대와 다르다. 사람들은 조영남의 이런 매력에 끌리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위해 여러 번 만났지만 ‘조영남 미스터리’를 다 파헤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도 드물다는 점이다. “누가 나에게 반 고흐처럼 살아서 외롭다가, 죽어서 유명세를 얻겠냐고 묻는다면, 노(No). 난 싫어. 난 죽어서 아무도 나를 기억 못하더라도 살아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 그만큼 사람이 좋고, 또 사람이 소중해.”

홍주연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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