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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평양 방문을 기원하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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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입장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오랜 냉전을 청산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7년 전 회담은 예상치도 못한 미래지향적 회담이 됐다. 당시 나는 아웅산 사건, 대한항공기 폭파, 납치 등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사죄가 나온 뒤 양 정상이 악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두 정상은 눈이 마주친 순간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호 방문과 금강산 개발, 경의선 연결, 공업단지 개발 등 눈깜짝할 새 수많은 항목에 합의해 버렸다.

전후 60년, 틈만 나면 한국으로부터 사죄 요구를 받아 온 일본인으로서는 북한의 범죄는 순식간에 용서되고 일본의 전전(戰前)·전쟁 중 범죄는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이 그간 북한과 국교를 맺지 않은 것은 냉전 시절 한국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70만 명이 넘는 재일 한국인·조선인들이 그동안 (민단계와 조총련계로 나뉘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없었던 것도 남북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50년간의 남북 대립에서 일본은 한결같이 한국 편에 섰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가진 일본인은 극소수였다. 탈북자들을 보면서 북한 독재정권이 속히 종식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 했을 땐 적어도 그동안 한국을 지지했던 주변국에 한마디 인사라도 했어야 했다.

한국이 갑자기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7년 전 방북 당시는 물론 그 뒤로도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청와대는 적어도 일본 국민이 이해할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남북한 관계 개선, 나아가 통일 논의를 환영하지 않는 일본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한국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솔직히 북한 주민은 진심으로 이를 갈구하리라 생각한다. 전쟁 당시 일본인이 그랬듯이 전체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전쟁 중 투항 부대원을 사살하도록 교육받으며 끔찍한 전체주의를 체험했다. 후손에게도 실상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북한 체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옛 일본 군국주의와 같은 끔찍한 전체주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런 북한과 대치해 온 한국을 지지해 온 일본인의 마음에 가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갑작스러운 햇볕정책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토록 다른 체제 속에 살아온 남북한이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사상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원해 온 미국과 일본에 아무 설명도 없이 “민족 화합은 좋은 것”이라는 일반론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이 그간 지켜 온 신념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북한과 50년간 싸워 온 것인가. 정상회담 이전에 이런 의문에 답할 수 있을까. 대선을 의식한 퍼포먼스라는 지적은 없나. 머리 좋은 북한 지도자가 레임덕에 빠진 한국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건 아닐까.

일본인들이 갖는 이런 수많은 의문을 한국인들은 느끼지 않는 걸까. 같은 민족의 잘못은 사죄 없이 금방 용서가 되는가. 그럼 일본인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제까지 계속 사죄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적인 평양 방문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원대학 학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