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요리,저런얘기] 열 받은 엄마 ‘신의 솜씨’ 발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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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돼지갈비찜엔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세 딸의 중심에 있는 우리 집 유일한 남자. 제일 웃어른인 할머니가 계셨지만 워낙 효자인 아버지의 뜻을 꺾으시거나 나무라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씀은 우리 집안의 진리이자 법이었지요.

 아침부터 장맛비가 지루하게 내리고 있던 날. 대청마루에서 신문을 읽던 아버지가 갑자기 “점심 식사하러 나가자”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노모에게 훌륭한 식사를 모시기 위해 늘 맛있는 집을 알아두었다가 이렇게 가족을 끌고 가거든요. 그날도 메뉴가 무언지, 장소가 어딘지도 모른 채 우리 5명의 여자는 한 남자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습니다.

 15분쯤 걸었을 때 세 딸들은 ‘아까 왔던 그 길을 다시 왔어’라며 눈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걷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도 조용히 뒤를 따랐습니다. 장맛비에 할머니의 곱디고운 모시 한복 치마와 하얀 고무신은 벌써 흙탕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다시 20분쯤 지났을 때 할머니의 입이 열렸습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자. 이 골목만 세 번째다. 뭘 먹겠다고 이 많은 식구를 고생시키니?”

 할머니의 한마디에 아버지는 바로 보이는 한옥 대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가 찾던 그 집이 맞는지도 모른 채 모두들 매운 돼지갈비찜을 먹었습니다. 그날 한마디 말도 없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곤 “그 집보다는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다”며 매운 갈비찜을 만드신 겁니다. 그 뒤로 어머니의 갈비찜은 우리 집 명물이 됐습니다. 나중에 맛본 삼촌이나 고모들도 어머니의 갈비찜에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며 “조금만 더”를 부탁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하다가 가끔 매운 갈비찜을 만나면 카리스마 넘치던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이 유일하게 구겨졌던 그날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납니다. 아버지가 그처럼 민망해하던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우리 세 딸은 그런 아버지가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어머니의 매운 갈비찜과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지며 마음은 대구 집으로 달려가고 있네요.

(신은주·37·서울 강남구 신사동)

■재료(4인분 기준)=돼지갈비 1㎏, 고춧가루 5큰술, 다진 마늘 10큰술, 다진 양파 1/2개, 간장 6큰술, 청주 5큰술

■만드는 법=조리방법이 매우 쉽다는 것이 매운 갈비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일반 갈비찜을 할 때처럼 일차 조리한 고기에 양념을 얹고 바글바글 맛나게 끓여 양념이 잘 밸 정도가 되면 끝. 마늘 맛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다진 마늘(2큰술)을 추가해 한번 더 끓여 주면 된다. 매운 갈비찜에 밥을 비벼 먹는 것도 좋지만 요즘처럼 더울 땐 찬물이나 김칫국에 말은 밥과 함께 먹어도 별미다. 국수나 라면을 곁들이면 포만감까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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