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공해현장 고발:7·끝(우리 환경을 살리자: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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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연탄공장인근 주택서 발병 “충격”/한 여인 삶 앗아간 「검은 먼지」
차곡차곡 앙금처럼 몸속에 쌓여 어느날 갑자기 한 인생을 파괴시키는 환경오염의 병마.
서울올림픽의 열기로 들떠있던 88년 각 신문의 사회면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진폐증 여인」 박길래씨(52)의 사연은 환경오염의 폭력앞에 누구도 안심할 수 없음을 경고했다.
전북 정읍이 고향으로 16세때 상경,독신으로 가정부·행상 등 온갖 고생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지만 탄광근처에는 살아본 일도,가본 일도 없는 박씨.
그러나 79년 난생 처음으로 내집을 마련한 곳이 연탄공장이 모여있는 서울 상봉동이었다는 것이 불행의 시초였다.
전에 살던 삼선교의 집 전세금 1천4백만원에 은행빚 1천4백만원을 보태 내집을 마련한 박씨는 양품점을 운영,5천만원짜리 연립주택까지 또 한채를 마련해 동네에서는 알부자로 통했다.
상봉동으로 이사간지 5년여쯤 지났을 무렵부터 기침이 나고 호흡이 가쁜 증세가 나타나며 앓는 날이 잦아졌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해보았지만 한결같은 진단은 폐결핵이었다.
86년 11월. 그는 국립의료원에서 폐조직을 떼내는 조직검사끝에 진폐증으로 판정받았다. 탄가루가 날리는 탄광속에서 착암기를 들고 일하는 광원에게나 나는줄 알았던 진폐증이 주택가에 사는 박씨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는 연탄공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송결과 박씨가 받은 배상금은 1천만원이었다. 이 1천만원을 보태 가지고 있던 집 두채와 가재도구 일체를 팔아 치료비로 진 빚을 갚았는데도 20만원이 모자랐다.
첫 내집마련의 동네에서 얻은 병이 그의 재산과 건강·인생까지 송두리째 빼앗아간 것이다.
고 조영래변호사가 변론을 맡은 소송 당시 판사가 『수십년 일한 광원도 안걸릴 수 있는 진폐증에 어떻게 주택가에 살던 당신이 걸리느냐』며 웃던 모습이 생각나서 박씨는 승소후에도 몇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환경오염으로 사람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아예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던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소송을 하면서 그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지역주민들과 상봉동 주민 공해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환경오염업소인 연탄공장을 이전토록 하고 현지 지역주민을 상대로 진폐여부 조사를 요구했다. 조사결과 여러명이 같은 진폐증에 걸려있음이 밝혀졌다.
50평짜리 단독주택에 살던 박씨는 88년 서울 신영동 보증금 50만원,한달에 6만원의 1.5평짜리 사글세방으로 옮겨 영세민에게 지급하는 양곡과 한달에 4만원의 생계보조금을 받으며 살고 있다. 2∼3년전까지만해도 환경단체나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약값이나마 댈 수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마저도 끊겼다.
현재 국립의료원 흉곽외곽에서 진폐증 치료와 경희의료원에서 한방치료를 함께 받고 있지만 최근엔 진폐증 후유증으로 시력마저 나빠져 그간 봉투 붙이기로 몇푼씩 벌던 용돈마저 궁해졌다. 『치료비요. 한달에 수십만원씩 들지만 가진게 있어야지요.』
처음에는 자신에게 병을 준 남들을 원망도 해보았지만 이젠 산다는 것 자체가 남에게 폐가 되는 자신이 한스럽다는 박씨는 『모든게 허물어졌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대신한다.<채인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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