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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칼럼>의원시세는 2백만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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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옛날에 얘기를 좋아하는 富者가 있었다.이 사람은 어찌나 얘기를 좋아하는지 웬만한 얘기로는 성에 차지 않아 늘 더 긴 얘기를 원했다.
어느날 한 나그네가 富者에게 길고 긴 얘기를 해주마고 하면서얘기를 시작했다.『…남쪽 어느 고을에 큰 쌀창고가 있는데 그 근처에는 쥐들이 들끓었다.쥐 한마리가 창고에 들어가 쌀을 물고나오면 그뒤에 꼬리를 물고 다른 쥐가 들어가고 그 쥐의 꼬리를물고 또 다른 쥐가 들어가고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고….』 나그네가 하루 반나절 동안「꼬리를 물고…」를 계속하자 듣고만 있던 부자양반도 더는 못참겠는지『쥐가 이제 몇마리 남았느냐』고하더라는 것이다.
새해들어 우리사회의 모습이 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가는 옛날얘기를 연상케한다.지난 연말 우루과이라운드(UR)타결로 쌀개방이 결정되자 꼬리를 물고 대폭개각이 있더니 개각 다음에는 洛東江오염이 꼬리를 물고 터지고 다음에는 제2의 張女 人사건이 꼬리를 물고 그 다음에는 3人組강도가 꼬리를 물고 이번에는 국회勞動委 돈봉투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쥐가 몇마리 남았는지 모르는 것처럼 꼬리를 물고 일어날 사건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사건은 다른 사건이 나면 묻혀버리고 그 사건은 또다른 사건으로 덮여지고 넘어간다.무엇 하나 개운하게 정리되고 넘어가는게 없다.이번 돈봉투사건도 2주일이나 세상을 시끄럽게 했지만 얼마안가 다시 다른 사건으로 묻혀버릴 것이다.
그러나 묻혀지긴 묻혀지겠지만 이번 사건의 戱畵的 요소는 상당기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고 일단 위기를 벗어났다지만 政治圈은 실은 골병이 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국회의원「時勢」를「2백만원」쯤 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대기업사장이 국회에서의 僞證혐의로 고발당할 위기에 빠졌는데 그걸 막아 보자고 손을 쓴게 봉투에 고작 2백만원을 넣어 보냈다는 것이니 時勢가 2백만 원쯤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세상物情에 약삭빠른 대기업의 판단이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고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4년전에 2억원을 먹었다가 자기비書의 고발로 구속된 의원은 정말 스케일이 큰 셈이다.그때 고발한 비書에게 한 與黨인사가 줬다고 한 돈이 바로 2백만원이었다.
이번에는 검찰도 우습게 됐다.그 기업을 특별히 봐줄 이유도 없어보이고 수사도 열심히 한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로「8백만원짜리 뇌물미수사건」을 캐내고 만 것이다.진상이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수사결과가 늘 인기作品이 될 수도 없 는 노릇이다.하지만 재벌 대기업이 8백만원으로 국회의원 3명을 매수하려했고 그나마 석달동안 의원을 만날 수 없어 전달하지도 못했다는 스토리를 발표하는 검찰의 속이 편치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수사결과를 두고 어떤 신문은 검찰과 기업의 머리싸움에서기업이 이긴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업이 이긴 것인지,진상이 실제 그런 것인지는 速斷할 수 없다.다만 이래서 政治圈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벗어났다.그동안 눈총의 대상이 돼온 몇몇 人士도 안도의 숨을 쉬고 설을 맞이할것이다. 그러나 政治圈은 이번에 발등의 불은 껐지만 속으로 단단히 멍이 든 것을 숨길 수 없다.앞서 말한대로 당장 의원時勢가 폭락(?)했다.많은 사람들이 의원 얼굴을 보면 대번에 「2백만원」이 연상되지 않겠는가.정치에 대한 不信.冷笑는 또 어쩌겠는가. 사람들은 발표보다는 여전히 「說」에 더 귀를 기울인다.수사에서는 혐의를 모면했지만 국민의 心中에는 「?」가 지워지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누군가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보면 국회.정당도 한심했다.같은 의원,같은 당원이면도매금 亡身인데 2주일이 되도록 어느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없었다.국회일에 국회의장이 손쓸 여지가 없고,소속의원 일에 정당이 무기력.무책임했다.원래 한가족.한동네 사람 끼리는 척하면30里라는 말처럼 웬만한 일은 서로 알고 눈치채게 마련인데 알았는지 몰랐는지 政治圈에서는 말이 없었다.이로 보아 政治圈은 自治능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것 같다.
***꼬리 안남게 처리해야 앞으로도 로비의 필요를 느끼는 측은 늘 있을 것이고 政治圈은 항상 돈이 필요하다.이번 사건의 처리방식이 혹시라도 안들키게 전달하고 안들키게 접수하는 고도의기술을 개발하는 촉진제가 될까봐 걱정이다.
더 이상 사건이 꼬리를 무는 행진은 없어야겠다.그러자면 꼬리를 자르는 수밖에 없다.사건이 있으면 개운하게 처리해야 꼬리가남지 않는다.발표 보다는 「說」을 더 믿게 되고 많은 사람이 속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한 표면상 묻히더라도 꼬리는 남게되고그 꼬리가 언젠가는 다시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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