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간다>79.인도네시아 술라웨시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발리의「응우라 라이」공항을 이륙한 가루다비행기는 이내 푸르고드넓은 남태평양을 보여주었다.옆자리의 오스트리아 비뇨기과 의사는 발리는 영화『남태평양』의 무대였다고 하면서 2년전에 두달간인도네시아 전역을 돌아보았으나 술라웨시만은 보 지 못했기에 오늘 이렇게 술라웨시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술라웨시는 인도네시아의 1만3천여개 섬중에서 네번째 큰 섬으로 낙지처럼 생겼다.
술라웨시를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대분분 타나 토라자를 보기 위해서다.그만큼 관광의 명소다.토라자는 술라웨시 한가운데 산악지대(해발 8백m)에 위치한 마을로 토라자족의 독특한 전통 문화와 의식.습관들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지금 이 비행기 승객의 90%가 외국인인데 이들 또한 토라자를 보기 위해 이 비행기를 탔으리라.
발리를 떠난지 1시간만에 우중판당에 닿았다.우중판당은 술라웨시의 주도(州都)로 인구는 60만명 정도다.고아왕국이 한창 이름을 날리던 시절(13~17세기)이곳 역시 향료무역항으로 번성했다.그러나 위에서 내려다 본 우중판당은 평평한데 다 건물 또한 낮았다.
시내로 들어가 보아도 도시는 퇴락했다는 느낌만을 안겨주었다.
바닷가에 있는 로테르담요새만이 고아시절의 화려했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보여줄 뿐이었다.고아왕국은 뻗어오는 네덜란드의 세력을막기 위해 로테르담요새를 축성했으나 신형 병기로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외세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요새가 있는 로사리해안에서 석양을 바라보았다.퇴락한 요새와 석양,그리고 마닐라만 분위기가 그럴듯 했다.
이튿날 오전8시에 출발하는 토라자행 리만버스를 타기 위해 우선 표를 구해야만 했다.마침 로사리해안에서 만난 일본아가씨가 버스 정류장을 잘 알고 있었다.두어시간전에 그곳에서 버스표를 샀기 때문이다.어둠이 몰려오자 그녀는 그곳으로 안 내했다.그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종합터미널 뒤쪽 후미진 곳이었다.표 파는 아주머니는 좌석번호가 적힌 표를 건네주면서 8시까지 꼭 와야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일본아가씨에게는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헤어졌다.내일 아침에 보자고 약속하고서 .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만났다.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버스터미널로 모여들었다.모두들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토라자에 대한 기대가 그들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한 것이리라. 8시가 되자 버스는 출발해 금방 시내를 빠져나갔다.2차선 길 양쪽으로는 초지가 펼쳐지면서 소와 말들이 노니는 모습이 나타났다.추수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정말 평화로운 풍경이었다.남국 특유의 목재 2층집도 드문드문 나타났다.1층 엔 기둥만있고 2층에만 벽이 있어 주거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형태로 1층이 텅 비어있는 것은 습기와 맹수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것이다.바다가 나타났다.대나무로 만든 물견대(物見臺)와 커다란 어망이 보였다.술라웨시만의 특이한 어업형 태를 보는 것같았다.파레파레와 란테파오라는 두개의 시를 지나 우중판당을 떠난지 9시간만에 토라자에 당도했다.버스가 서자 안내원들이 달려들었다.호텔을 소개해 주겠다,토라자를 안내해 주겠다면서 한시도 사람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어쩔수 없이 그중 한사람과 흥정해야만 했다.그는 다음날 하루종일 차를 가지고 토라자의 전통가옥인 통코난과 암굴묘,그리고 장례의식을 꼭 보여주겠노라고 했다.그러면서『당신은 행운아입니다.왜냐하면 장례의식을 직접 구경하는 외국관광객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먼저 간 곳은 마루앙.배모양을 닮은 통코난이 있는 곳이었다.통코난의 지붕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처마 아래의 벽면은 단청처럼 꾸며놓았기에 무척이나 아름답다.
단청의 상단에는 닭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토라족의 기상을 나타낸 것이었다.지붕에서 땅으로 수직으로 내리뻗은 기둥에는 장례식때 잡은 물소의 뿔들이 걸려 있었다.
산을 지나고 물을 건너 장례식장으로 갔다.임시로 세운 통코난이 여러채 있고,많은 사람들이 식장을 메우고 있었다.그제 비행기에서 만났던 오스트리아 의사도 그 속에 있었다.시간이 되자 검은색 물소 한마리가 넓은 공터로 끌려 나왔다.그 놈이 자리를잡자 단검을 가진 몇사람이 한바퀴 돌고선 그놈의 목줄을 내리쳤다.붉은 피가 금세 쏟아졌다.그러나 보는 이의 얼굴은 평화로워보였다. 살생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물소를산채로 잡아 죽은자에게 바쳐야만 죽은자가 저승에서 평안하게 잠을 잔다고 믿고 있기에 그러하다.물소는 계속해서 끌려 나왔다.
물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죽은자에게는 좋은 것이니까.그날 은 네마리가 바쳐졌다.물소잡이 의식이 끝나면 며칠뒤 시신은 영원한 안식처로 옮겨진다.그곳을 보기 위해 레모라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레모라는 곳은 높은산 바위벽이 있는 곳이었다.벽에는 구멍이 뻥뻥 뚫려 있고,그 앞으로는 타우타우라고 부르는 목각인형이 장식되어 있었다.타우타우는 작은 미이라처럼 생긴 사자인형(死者人形)으로 죽은자의 혼이 천국으로 올라가도록 도와준 다는 토라자족의 신앙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묘의 형태는 암굴묘.그것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날따라 밤에는 학생들의 장기자랑이 있었다.노래와 만담.민속무용등의 프로그램이었다.토라자는 그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는데 열성이었고,또 전통문화를 관광상품화하는데도 귀재였다.목각.수.
토라자커피는 사람들의 혼을 빼놓을 지경이었으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