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이름 같은 것도 죄”/「장여인」사건 동명사 한숨 “푹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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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산 삼보신용 예금주 인출소동/삼보컴퓨터 해명광고까지 게재/82년엔 일신제강 부도 부르기도
『이름 같은 것이 무슨 죄가 됩니까.』
장영자씨 어음부도사건의 불똥은 엉뚱한 곳에도 튀었다. 사건에 연루된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자주 거명되면서 이들과 이름만 같을뿐 전혀 관계가 없는 「동명이사」가 고객의 오해로 애꿎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부산의 삼보신용금고. 동일인 여신한도는 물론 실명제까지 위반해가며 장씨에게 거액을 대출해줘 이번 사건의 「주역」이 된 문제의 서울 삼보신용금고와 이름이 한자까지 똑같은 금고는 당사자 못지 않게 시달렸다.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면서 관련여부를 확인하는 문의전화에 시달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삼보의 부산 지점쯤으로 착각한 나머지 불안을 느낀 소액 예금주들이 인출사태를 벌였다. 이 금고는 「이름이 같은 죄」로 최근 신규 예금이 뚝 끊긴데다 하루 1억∼2억원씩 예금이 빠져나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 금고 배달순사장(62)은 『아예 이름을 바꾸고 싶지만 고객들에게 또다른 혼동을 줄까봐 엄두가 안나 액땜을 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보」하면 보통사람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삼보컴퓨터도 전화공세에 한바탕 난리를 쳤다. 이 회사는 급기야 각 언론사에 『장씨사건 관련기사를 쓸 때 단순히 「삼보」로 줄여 표기하지 말아달라』고 공문을 띄우는 한편 일간지에 『삼보컴퓨터는 삼보신용금고와 전혀 무관한 기업입니다』라는 내용의 해명(?) 광고를 냈다.
장씨와 관련돼 부도가 난 부산 대명산업과 이름이 비슷한 콘도업체 대명레저산업도 비슷한 홍역을 치렀으며 대명레저산업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던 럭키증권은 이 때문에 장씨의 주식투자 창구로 오해받기도 했다. 동명으로 인한 오해와 해프닝은 종전에도 더러 있었으며 심지어 해당기업의 부도를 부르는 심각한 경우도 생겼었다.
82년 이철희·장영자사건때 쓰러진 일신제강도 따지고 보면 동명이사의 부도가 몰락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자금사정이 좋았던 일신제강은 아무 관련없는 봉제업체 (주)일신이 부도나자 오해한 단자사들이 1백억원 가량의 일신제강 어음을 돌리는 바람에 일거에 자금이 꼬여 장씨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92년 상업은행 지점장 자살사건에 연루됐고 지난해에는 결국 부도를 낸 우진전기 때문에 이와 무관한 우진전자가 한동안 고생했다. 같은업종의 상장사인 동신제지와 동신제지공업은 늘 「주소가 뒤바뀐」 관련 루머가 증시에 나도는 바람에 『무슨 무슨 사업은 동신이 아닌 동신이 추진하고 있다』는 따위의 공시를 내기에 바쁘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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