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만/공해현장 고발:3(우리 환경을 살리자: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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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 파란 바닷물이 간장색깔로/폐수 마구 흘려 흡사 「화장실 없는 집」/모든 어패류 채취 못해… 암 3기 증세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가곡 『가고파』의 본향 마산만­. 그 쪽빛 바다가 불임의 사해로 변해가는 과정과 뒤늦게 마산만을 살려보자며 2중3중으로 쏟고 있는 노력은 환경과 인간·산업화와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산만의 죽음은 산업화와 함께 시작됐다. 70년대초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이 조성되면서 우뚝우뚝 들어선 일본산 수입형 공해공장들은 납·카드뮴·구리 등 중금속이 포함된 치명적인 산업폐수를 하루에도 수만∼수십만t씩 마구잡이로 바다로 흘려보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방침에 따라 73년 창원공단이 조성되면서 오염은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됐다.
75년 송림이 우거진 백사장으로 유명하던 가포 해수욕장은 해안에 밀려드는 거품덩이와 쓰레기·산업폐수로 간장색깔로 변해버린채 폐쇄됐다.
4년뒤인 79년 마산만에선 모든 어패류의 채취가 금지됐다. 조개와 꽃게를 잡고 낚시꾼들이 몰리던 봉암교 아래는 수출자유지역·창원공단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합류되면서 악취가 진동했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모래위에는 허옇게 배를 뒤집은 고기들이 떠밀려왔다.
80년대들어 경남대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환경연구가 시작되면서 산업화의 화려함속에 가려진채 죽어가던 자연의 실상이 하나씩 밝혀졌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바다,그속에서 자라나는 플랑크톤,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물고기,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갈매기…. 갈매기의 몸속에서 중금속이 대량으로 발견됐다는 학술조사결과는 환경오염이 결국 먹이사슬의 가장 위쪽에 서있는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미칠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오염의 책임은 공장폐수만이 아니다.
70년대초 15만여명에 불과했던 마산·창원 인구는 산업화 20년만에 무려 6배가 늘어난 90여만명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바다의 모습을 보면서도 시민들은 날마다 마구잡이로 음식물 찌꺼기·합성세제·분뇨들을 쏟아냈다. 『나하나 쯤이야』거나 『나혼자 조심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그러다보니 결국은 아무도,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악순환이었다.
이따금씩 마산만을 살리자는 운동도 있었다. 마산만 오염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기업인들,정화책임을 져야 할 행정당국이 중심이 된 「범시민 걷기대회」 「실천대회」 「대책위 결성」…. 그러나 실천과 투자가 뒤따르지 않고 어깨띠나 두르는 「반짝」성 운동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부는 80년대말부터 뒤늦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시민들도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마산만은 이미 암의 3기쯤에 접어든 상태였다.
마산만을 살리기 위한 첫번째 노력은 바닷속 깊숙이 죽음처럼 가라앉아 있는 중금속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아연 1천4백60t,납 4백40t,구리 3백90t. 탄광 얘기가 아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해양연구소가 조사한 마산만 바닥에 쌓여있는 중금속의 양이다. 90년초 일본에서 준설선이 도입됐고 해저에 박힌 대형관을 통해 빨아올려진 오염된 진흙더미는 가포앞바다로 옮겨져 매립됐다.
마산만 오염을 물색깔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던 마산시민들은 바닷속에서 떠오른 시커먼 진흙더미를 본뒤 한결같이 진저리를 쳤다.
『시커멓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한,구역질 나는 오염덩어리가 바다 바닥 전체를 덮고 있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망가뜨린 바다의 진짜 모습이라니….』 주민 김영준씨(46)는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다.
90∼91년에는 마산·창원공단지역 폐수가 흘러들어가는 하천에서 가까운 바다에서부터 평균 1.5m 깊이로 켜켜이 쌓여있던 1백만입방m의 진흙덩이가 건져올려졌다. 92년 23만입방m,93년 37만입방m의 오염된 진흙이 준설됐고 올해 50만입방m를 긁어내면 작업은 일단락된다.
마산만의 준설작업과 함께 1백만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날마다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생활하수·분뇨를 걸러내는 하수종말처리장 건설도 시작됐다.
『하수종말처리장이 없는 도시는 한마디로 화장실이 없는 집과 같습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20여년간 마산 앞바다에 얼마나 많은 양의 도시 배설물들이 쏟아져 들어갔을지를 생각해보면 마산만이 죽은 것은 결국 인간의 업보인 셈입니다.』
경남대 환경보호학과 권영택교수의 설명이다.
마산만 준설·하수종말처리장 건설에 지금까지 든 돈만도 1천억원. 마산만 한곳의 응급조치로 쓴 돈이 그 정도고 앞으로도 얼마가 들지 정확히 계산조차 할 수 없다.
문제는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들이고도 마산만이 과연 되살아날 수있을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준설이 끝난 지역에서 또다시 엄청난 양의 오염된 진흙더미가 발견됐고 조사결과 수출자유지역·창원공단쪽 하천에선 여전히 많은 양의 중금속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수종말처리장에서 1차로 간단한 거름과정만을 거치고 파이프라인을 통해 마산만 밖의 바다로 방출되는 생활하수들은 아직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2차 처리장 건설이 완료될 때까지 마산만 대신 진해만을 오염시킬게 뻔한 일이다.
마산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너나 없이 그 푸르던 쪽빛 바다를 그리워한다. 『인간은 왜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가.』 죽어버린 마산만이 우리 모두에게 소리없이 외쳐대는 항변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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