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앞선 상고심사제 논란/이은주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법원 사법위가 도입 건의한 「상고심사제」를 둘러싸고 대법원과 대한변협의 의견대립이 심각하다.
상고심사제란 더이상 심리나 판결문 작성이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상고사건은 대법원이 업무과다를 이유로 심리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제도로 5공시절의 「상고허가제」 부활로 볼 수 있다.
사법위측은 대법원의 판결중 86.8%가 상고기각되는 현실에서 절대다수의 쓸데없는 상고를 사전에 막는 것이 진실로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변협은 법원이 오로지 「업무경감」을 위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려 한다며 강력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양측 모두 「국민」을 위한다고 내세우고 있지만 한 제도에 대한 평가가 같은 법조계안에서 이처럼 상반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법원은 대법관 숫자를 늘리지 않고 권위를 계속 누리면서 사건을 줄여 대법관의 격무를 면하자는 것이고,변협은 상고사건을 줄이면 근본적으로 변호사들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반대의사를 밝혀오면 변협은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변회 대회의실에서 법조인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공청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드디어 「행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공청회는 상고심사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의 장이라기 보다 변협의 일방적인 주장을 펴기 위한 자리여서 진지한 토론을 기대하고 참석했던 이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공청회에서 변협측 주제발표후 토론에 들어가기전 이세중 변협 회장은 『사법위가 상고심사제 도입을 강행한다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한편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법위 위원중에는 변협 추천 변호사가 5명이나 참여하고 있는데도 변협이 자꾸 논의를 장외로 끌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상고심사제는 사실심 강화가 전제된다면 무리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사실심의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보다 오로지 도입반대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어쩌면 상고심사제는 채택여부에 앞서 도입돼도 부작용이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부터 먼저 논의한다면 도입여부는 자연스럽게 결정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방법을 도외시한채 제도 자체만으로 된다,안된다고 논의하는 것은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사법위나 변협 모두 「상고심사제」 도입을 놓고 공허하게 「국민」만 들먹이다 감정대립으로 치달아 대법원장 취임후 모처럼 조성된 법조계의 재조­재야 화해분위기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기우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