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고지식하게 굴지마”(중국백경: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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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큰 도둑은 보고회를 주재하고 중간 도둑은 보고회에 참석하고 작은 도둑은 반성한다. 이도 저도 아닌 좀도둑만 감옥에 간다.』
경제체제의 변화와 함께 부정·부패현상이 사회에 역병처럼 번지면서 반부패 보고회가 중국 곳곳에서 빈번하게 개척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부정은 부정은 권력이 클수록 법의 힘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오히려 눈덩이처럼 커지는 양상이다. 이른바 권력형 부패다. 요즘들어 북경에 나돌고 있는 유행어 가운데는 이같이 겉다르고 속다른 세태를 꼬집는게 많다.
최근 인민일보는 시중에 나도는 몇가지 「유행어」를 들면서 이는 냉소적이며 부정적 심리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첫째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란 유행어다. 편법으로 적당히 이익을 챙기려다 통하지 않게 되면 세상물정도 모른다』며 『흥,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며 빈정댄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혁명의 열정 하나만으로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던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지금은 다 이래』가 있다. 공금으로 가라오케를 간다거나 커미션을 건네주다가 거절당하면 『지금은 다 이래』라며 달랜다.
마지막은 『너무 고지식하게 굴지마』다.
사회주의적 인간형의 모범이었던 레이펑(전봉)은 대공무사의 헌신적인 생활을 하면서 『혁명의 바보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당시 「바보」란 자기 겸양으로서 미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융통성없이 너무 고지식」한 「진짜 바보」일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으로 뒤바뀐 것이다.
결국 『간 작은 놈은 굶어 죽고 간 큰 놈은 배터져 죽는다』란 유행어가 맞아떨어지는 세상인 것이다.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은 지금같은 세상에 굶어죽을 각오부터 하는게 좋다는 말일게다. 반부패 캠페인을 요란스레 벌이지만 지금같은 세상이야말로 수단껏 챙기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뜻도 들어있다.
도시에선 부정·부패에 관한 유행어가 많은데 반해 농촌지역은 개발정책의 그늘에 가린채 갈수록 찌들어가는 생활을 풍자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값비싼 화학비료 내 안사면 그만이고 싸구려 양곡수매 내 안팔리면 그만이네.』 『양곡값은 푼푼이 기고 비교값은 몇십전씩 뛰고 농약값은 몇원씩 치솟네.』 사천성 일대 농민들 사이에서 나도는 유행어들이다. 농촌 소년이 학교를 중단하고 멜대(견담)를 매고 장사에 나섰다. 방송기자가 왜 학교를 그만 뒀느냐고 묻자 그 소년의 답은 딱 한마디였다.
『돈이 없어서요(몰전).』
유행어일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지금 중국에서 제일 사연많은 말로 보아 틀림없을 것 같다.<북경=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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