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서해경제권③/심양의 해외거점 후쿠오카「안테나숍」(밖을 보자: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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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실험상점 열어 무역·정보교류/상대지역에 뿌리 내려 내륙약점 극복/자본·기술도입 배후창구 역할도 수행
지난 92년 봄 중국의 최고실권자 덩샤오핑(등소평)의 대호령으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중국경제의 개혁·개방정책은 서해와 발해연안을 출발,맹렬한 기세를 보이며 내륙으로 달음질치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대담한 변신을 지시한 등소평의 명에 따라 중국정부는 서방의 기술·자본을 도입하기 위해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경제특구」 「경제기술개발구」 등 공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제 그 개방경제의 열기는 중국 내륙에까지 달구고 있다.
중국 요령성의 주요도시 심양은 개방경제의 선두주자로 한걸음 달아나 있는 서해연안의 중공업도시 대련으로부터 4백㎞ 떨어진 내륙에 위치해 있다.
『우리 심양은 대련에 비해 출발은 늦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느 경제특별구보다 뛰어난 투자환경을 조성해놓고 있기 때문에 곧 따라갈 수 있을 겁니다.』
인구 6백50만명으로 중국 제4의 대도시이면서도 내륙에 위치해 있다는 단점 때문에 개발 우선순위에서 다소 뒤처진 심양의 특별구관리위원회 부주임 장리(장력)씨의 말속에는 중국 각 도시간의 개발을 둘러싼 라이벌 의식까지 엿보인다.
심양시는 환서해경제권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일본의 자본·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서해안에 접해있으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후쿠오카(복강) 진출을 노리고 있다.
후쿠오카현의 현관인 기타규슈(북구주)항은 지금의 교역량으로만 봐도 환서해경제권시대의 주요 물류기지화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층은 레스토랑
지난 92년 이 항을 통해 들어온 국별 수입액은 전체 4천3백83억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3.3%나 된다. 국별 수출액도 총 5천4백2억엔 가운데 10.4%를 차지하고 있다.
기타규슈항만 놓고 볼때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수입 6.5%,수출 22.6%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최대 경제파트너 미국을 이미 능가하는 수준이다.
심양의 대일본 접근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심양시가 전액 출자해 후쿠오카에 설립한 「안테나 숍」 심양물산 유한회사다. 안테나숍이란 큰 사업을 앞두고 고객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여는 「실험상점」.
후쿠오카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해안마을의 3층짜리 흰색 건물에 자리잡은 후쿠오카 심양물산유한회사는 직원이라고 해야 고작 5명밖에 되지않는 「미니회사」지만 의욕적으로 벌이고 있는 각종 사업의 폭은 머잖아 찾아올 거대한 환서해경제권을 내다보고 있다.
이 회사 천췌(진확·38)사장은 심양시 경제담당 공무원이면서 본격적인 대일교역을 위해 일본에 기업을 설치,사장자리에 앉아있다. 그들 말대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모습이다.
진 사장은 지역간 경제교류에 앞서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일은 서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교류이며 심양물산은 이를 위해 설립된 회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밝힌 이 회사의 주된 업무는 크게 세가지.
첫째는 심양의 특산물을 일본으로 수입해 도매상에 파는 일과 기계류·전자제품 등 중국이 필요로 하는 일본 제품들을 물색해 소개하는 무역중개업무다.
두번째는 지난 92년 12월 이 회사 1층을 단장해 개점한 아담한 중국 레스토랑의 「먹거리사업」이며,세번째가 가장 중요한 중일간 정보센터로서의 역할이다.
일본과의 무역을 희망하는 심양의 기업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정보를 제공받고 있으며 심양에 진출하려는 일본 기업 역시 이곳을 통하고 있다.
심양시는 이러한 교역사업뿐만 아니라 기술도입에도 열의를 보이고 있다.
○서둘지 않는 경쟁
그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1월8일 후쿠오카현 이즈카(반총)시의 고용촉진사업단 이즈카 기술개발센터(오쿠라 마사노부 소장)에서 실시된 배관기술 연수다. 심양시는 일본의 선진배관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일본의 국제연구협력기구(JITCO)가 실시한 연수에 배관경력 5년이상의 경력자 9명을 파견했다.
형식상의 절차로는 심양시가 일중 우호협력회에 정식 요청하며 이 연수가 이뤄졌지만 배후에서 「심양의 안테나」가 작동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각 도시의 경제담당 책임자들은 일본이나 한국의 자본·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저없이 밝힌다.
경쟁이야말로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지름길이란 인식 때문이다.
환서해경제권을 준비하는 「아시아의 공룡」 중국의 손발은 열정적이고 경쟁적으로 움직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알아볼 것은 알아보고 두드릴 것은 두드려가며 차근 차근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해가는 이들의 모습은 언젠가 엄청난 일을 도모할 것만 같은 무서운 「만만디」의 저력으로 느껴진다.<김국진기자>
◎심양물산 사장 진확씨 인터뷰/“작은 것부터 시작 「큰일」 대비하는게 전략”
『1년에 고작 1억,2억엔 벌기위해 이곳에 회사를 설립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심양은 후쿠오카를 아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삼아 점차 현실화되어가는 환서해경제권 시대의 꿈을 실현시킬 작정입니다.』
지난해 11월17일 후쿠오카의 심양물산유한회사 사무실에서 취재팀과 만난 천췌(진확) 시장은 기관총 같은 유창한 일본어로 자신이 후쿠오카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에는 언제 왔나.
▲지난 81년 심양대학 재학시절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일본에 첫 발을 들였으며 4년후 규슈(구주)대학 문학부에 유학해 일중 비교문화를 전공했다. 그후 심양에 잠깐 돌아가 시에서 중일교류 업무를 맡아왔으며 91년 10월 이 회사를 설립했다.
­공식 직함은 무엇인가.
▲월급을 두군데서 받고 있으니 직함은 2개다. 하나는 심양시 대외경제무역위원회 주일본대표부 총대표이며 또 하나는 이 회사 사장이다.
­회사의 규모와 설립목적은.
▲규모는 보잘 것 없다. 자본금은 4천2백20만엔이며 직원은 모두 5명이다. 연간 매출액은 2억엔정도 된다. 물론 기업인 이상 이익을 내는게 목적이지만 앞으로의 환서해경제권 시대에 대비해 이 회사를 심양과 일본간의 정보 발·수신지로 활용할 생각이다.
­최근 중국식 레스토랑을 열었다던데.
▲경제교류에 앞서 민간교류와 상호이해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민간교류에는 「먹거리교류」 이상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레스토랑은 후쿠오카 시민들에게 심양을 알리는 수단으로 개점했다.
­환서해경제권 시대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심양시의 전략은.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일을 대비하는게 전략이라면 전략일 수 있다. 앞으로 한·중·일 3국의 지방정부와 민간기업이 참가하는 환서해경제권을 위한 실무회의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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