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철새와 ‘인간 철새’ 의 차이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올해 말 대선과 내년 상반기 총선이 다가오면서 철새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확고한 정치철학과 소신 없이 이리저리 당을 옮겨 다니는 ‘인간 철새’ , 즉 철새 정치인에 관한 말이다. 이 표현은 번식과 먹이를 얻기 위해 철 따라 서식지를 옮겨 다니는 철새에서 유래했으리라.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철새의 생태적 습성만 보고, 지조 없이 옮겨 다니는 인간에 비유해선 안 된다. 철새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하늘을 수천 수만㎞씩 이동하면서 커다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강한 귀소본능을 갖고 태어나서 길을 잃지 않고, 자기가 태어난 곳과 이동장소 사이의 정해진 경로를 정확하게 왕복 비행한다. 철새는 단지 양지만을 찾아 갈지(之)자 행보를 하는 인간 철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장 친근한 여름철새인 제비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추위를 피해 남녘으로 날아갔다가 3월 3일 삼짇날에 돌아온다. 우리 조상들은 이날 둥글게 엮은 오색실을 대문에 걸어두고 처음 본 제비에게 절을 세 번 해 여름에 더위가 들지 않게 하는 제비맞이 풍습을 지켰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철새인 기러기에 대해서도 애틋한 사랑을 보내 글과 노래의 소재로 삼고 친숙하게 여겼다. 또 철새는 각종 해충을 잡아먹거나 상하 계층 간 서로 포식관계를 이뤄 개체 수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새는 이같이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유익하다.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로 철새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 정작 사라져야 할 대상은 인간 철새가 아닐는지. 그들이 민의를 거스르며 정치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우롱하는 데에는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국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과 밝은 눈이 필요한 때다.

이광학 도서출판 푸른 돛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