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법률가 양성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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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재 가동중인 대법원「사법제도발전위원회」는 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광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대법원장에 의해 이 위원회에회부된 의제는 무려 26개에 이른다.
그런데 한가지 奇異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법개혁의 핵심적 과제중 하나로 생각되는 법률가 양성제도,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관건이 되는 사법시험제도는 아예 論外로 제껴놓고 있다는 점이다.법률가 양성에 관한 의제로는 사법연수원제도가 의제로 올라있지만 정작 사법연수원생을 선발하는 사법시험제도의 문제는 의제에서 빠져있는 것이다.
독자적 견해를 내놓은 大韓辯協의 의견서도 단지 시험 관장기관에 대해 언급할 뿐,법률가 양성제도의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법시험제도를 核으로 하는 법률가 양성제도의 문제는 단순히 좁은 의미의 법조계 내부문제만은 아니다.법률가가 되기까지 그들이 어떤 내용의 교육을 받고,이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느냐는 문제는 실로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법률가가우리 사회 지도층의 매우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또 매년의 대학입시에서 문과계열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법과대학에 몰리는 현상에서 보듯 국가 고급인력의 양성.관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요즈음의 표현을 빌리면「국가경쟁력 강화」에 직결되는 문제인 셈이다. 바람직한 법률가 양성제도를 고안하려면 먼저 앞으로의 바람직한 法律家像이 설정되지 않으면 안된다.이 점에 대해서 근래 歐美학자들의 논의는 중요한 시사를 준다.그 논지는 이렇게 요약된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 있어 法은 정책과 구별되기 힘들다.법적 판단은 곧 정책적 판단과 연결되어 있다.따라서 법률가에게도「정책형성능력」이 요구되며 법관들은「사법적 창조성」을 갖추어야 한다.요컨대 좁은 의미의 기술적 법지식만으로는 안되 며 전문적 정책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나아가 법률가들이 법조계만이아니라 사회 각계에서도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경우 그같은 정책능력은 더욱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과연 오늘 우리의 법률가들은 어떻게 양성되고 있는가 .법률가가 되기까지의 전형적인 경로를 그려보자.
법과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중.고교시절을 거의 입시공부에 매달린다.대학에 들어와서는 초급학년부터 사법시험 공부에 몰두한다.많은 경우 학교 강의도 제쳐두고「고시원」에 파묻혀 산다.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받는 교육은 기술적 실무교육에 치중되어 있다.그리고 나서 판사.검사.변호사가 된다.정책형성 능력이나 사법적 창조성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가.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대학의 법학교육이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은 교양교육도 아니고 직업교육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전국의 법과대학생 가운데 법률가로 진출하는 수는 5%에 미치지 못하는 데 이들 5%에게나,법률가 이외의 길을 가게 되는 나머지 95% 이상에게나 모두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인 절름발이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현실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美國 하버드 법대의 경우,3년간 개설되는 과목 수는 무려 1백70여개에 이른다.여기에는 법의 경제적분석.법과 정치경제.정신의학과 법.페미니즘과 법.스포츠와 법.
법과 포스트 모더니즘등 실로 다채로운 學際的 과 목들이 포함되어 있다.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있는 서울大 법대의 경우,60여 과목에 그친다.여기에 미국의 법과대학이 학부 4년을 마친 뒤의 대학원 과정임을 감안하면 그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우리의 법학교육이 제 구실을 못하는 데에는 법학교수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그러나 보다 근본적 원인이 기형적 사법시험제도에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고등학교 학생들이 입시공부에만 매달리듯 법대 학생들은 사법시험만 염두에 둘 뿐 이다.
지금의 사법시험제도는 독점적 法曹市場에의 進入을 허가하는 수직적 신분상승의 관문이지 결코 정상적인 전문적 자격시험이라고는볼 수 없다.
***과감한 學制개혁 필요 지난 권위주의시대의 사법시험제도는중.하류계층 출신의 유능한 인재들이 사회의 敵對的 逸脫者로 되는 것을 막는 기능도 했을지 모른다.이제 司試제도는 실무법률가라는 하나의 전문직 자격시험일 뿐이어야 하고,의사시험처럼 대학에서 정상적으 로 법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합격될 수있는 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물론 여기에 과도기적 일정한 조치는 필요할 것이고 學制개혁도 고려되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 강화는 과학기술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국가 고급인력의 육성.관리라는 차원에서 법학교육과 司試제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사법제도발전위원회의 再考를 바란다.
〈漢陽大교수.헌법학〉 ◇筆者약력^47세^서울大법대졸^美텍사스大비교법碩士^서울大법학박사^漢陽大法大교수^저서『법사회학』『미국헌법과 대외문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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