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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 녹이는 중국 혼춘(밖을 보자: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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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두만강하류 만㎢ 개발 “구슬땀”/국경무역센터·항구건설 총력/환동해 경제권 전초기지 눈앞에/일서 한발 앞서 면밀한 투자준비
중국의 두만강 개발 중심지인 혼춘은 온통 개발열기에 휩싸여 있다.
두만강 개발은 좁게는 중국의 혼춘·경신,러시아의 포시에트,북한의 나진·선봉지역을 잇는 두만강 하류의 소삼각주(1천평방㎞)가 중심이지만 이를 펼치면 연변 조선족 자치주·블라디보스토크·청진을 잇는 대삼각주(1만평방㎞)까지 확장된다. 혼춘은 결국 환동해경제권의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이미 이 지역엔 일본·한국의 자본·기술,중국·러시아·북한의 자원·노동력이 결합된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는 그날,「제2의 홍콩」 「동방의 로테르담」이 펼쳐지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화산같이 폭발할 혼춘열」.
지난해 12월10일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한글신문 연변일보 1면에 실린 김민웅 혼춘시장(조선족)의 인터뷰 제목이다. 실제로 김 시장은 기자에게도 혼춘의 개발열기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의 입에선 속초·포항과 같은 한국의 항구이름들이 술술 나왔다.
혼춘시 경제무역대표단을 이끌고 지난해 2월2∼18일,10월12∼11월3일 두차례 한국·일본을 방문한 그는 『속초∼혼춘간의 해상통로 확보,혼춘­일본 사카이미나도(경항)간의 자매시관계 합의 및 혼춘­포항간의 자매시관계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기자에게 『한국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을 바란다』며 부탁을 거듭하는 그에게서 중국정부 관리라기보다 환동해경제권 형성의 첨병으로 그날에 대비해 뛰는 기업가의 체취가 더 진하게 풍겼다. 그는 기자에겐 한국을 자극할만한 말은 피하려고 했지만 연변일보 인터뷰에선 이런 말을 했다. 『두만강 하류개발을 포함,동북아경제구역 개발에 대한 연구면에서 일본이 한국을 앞섰더군요. 일본에서는 이미 환일본해경제구 개발에 관한 전망계획이 연구돼 있었습니다. 당연히 혼춘의 두만강 하류지구 개발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더군요. 일본은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동향을 살피고 있습니다. 투자환경 조성이 성숙되는 그때 가서 대거 투자진격을 벌일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겁니다.』
두만강 개발의 선점경쟁에서 이미 일본은 저만큼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혼춘시 도문강(두만강의 중국식 이름) 개방개발판공실 김철부주임(조선족)의 설명은 일본의 정중동의 모습을 분명히 확인해주었다.
『중국의 길림성 철로항로지휘부(두만강 개발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 책임기관)와 동경의 마루이치(환일) 상사간에 설립된 도문강개발 실업유한공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일본 상업차관을 유치하기 위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현재 자본금이 20만달러(중국측 51%)며 앞으로 2백만달러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있지요.』 일본자금 유입의 파이프라인이 이미 매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국도 뒷짐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UNDP의 위탁을 받고 두만강 하류지구 개발전망계획을 연구중인 팀도 있고 지난해 삼성·대우·럭키금성·동아 등 그룹들의 투자를 위한 혼춘 발걸음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합의도 끌어내 올해부터 부분적으로나마 투자에 들어갈 전망이다.
○한국선 올해 투자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두만강지역이 동북아 경제협력의 센터로 부상될 것이고 따라서 지금 혼춘에 베이스를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UNDP의 두만강개발계획 분위기에 고무되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로선 특수전략지역에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지요.』
삼성그룹의 북경사령탑인 김유진 삼성물산 부사장은 북경에서 만난 기자에게 두만강지역이 남북한 경협에서 갖는 의미를 특별히 강조했다.
혼춘에 쏟는 중국 정부의 관심은 비상하다. 황해 연안지역의 성공적인 개발경험을 발판으로 동북부의 변경에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한듯하다.
길림성 정부가 88년 12월 혼춘을 경제개발구로 결정한뒤 91년 11월 중앙정부가 이곳을 1급 개방도시로 지정했고 92년 9월엔 국무원 특구판공실이 이곳에 변경경제합작구를 설치하는데 비준했다. 장쩌민(강택민)주석·리펑(이붕)총리 등 고위지도자들이 중국 「동방의 끝」인 방천초소까지 방문할 정도다. 두만강 개발때 중국측이 항구를 만들 계획인 방천엔 아직은 군초소가 있고 중국·러시아·북한 3국 국경지대의 긴장감이 남아있다. 그곳 전망탑안에는 장쩌민·리펑 등의 방문사진이 걸려있었다.
중국 당국은 동북 3성의 동해 출해권을 얻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으나 방천에 항구를 건설하자면 두만강 준설공사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돼 UNDP도 계속 타당성 조사를 진행중이다.
혼춘시는 방천에 항구가 들어서는 날까지 않아서 기다리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두만강 삼각주를 환동해경제권의 센터로 만들자면 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보세구역 등 자유무역지대 설정이 긴요하고 공장·사무실·상가 등이 들어서고 금융·서비스기관이 유치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반시설들 박차
혼춘은 변경경제합작구(20평방㎞)에 수출품 가공을 위한 공장·금융무역·보세창고·상업서비스·공용시설·관광시설 등을 활발히 갖춰가고 있다. 92년 10월부터 시작된 기초시설 건설이 최근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상하수도·열공급·전기·통신·도로·공장부지 공사 등에 착수,지금 한겨울의 언땅을 파헤치며 공사중이다. 영하 20도의 혹한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는 계속되지만 어둠이 빨리 찾아와(요즘 중국시간으로 오후 4시면 완전히 깜깜해진다) 공사담당자들을 아쉽게 하고 있다.
혼춘 시가지에서 장령자통상구로 빠지는 길 옆에 자리잡은 합작구 보세창고가 이미 완공,사용중이다. 구시가지에서 3㎞ 떨어져 있는 합작구는 러시아와 연결되는 장령자통상구까지 6㎞,북한과 연결되는 사타자 통상구까지 14㎞,그리고 방천까지는 70㎞ 거리다. 러시아의 포시에트와 자루비노항구까지는 각각 41㎞와 63㎞,북한의 나진·청진항까지는 93㎞와 1백71㎞ 거리에 불과하다. 혼춘에 인접한 도문시까지도 63㎞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러시아·북한의 국경접합지대는 「엎어지면 코닿을 정도」로 가깝다. 혼춘의 통상구에선 러시아·북한과의 국경무역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유무통상의 현장에선 국경이 무너져가고 있다.
중국측이 해상루트를 여는데 관심이 크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현지에서 체감되는 열도는 외부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혼춘에는 한중합작의 동일방직유한회사(한국측 주식회사 쌍방울)가 설립되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지난해초 설비가 부산에서 동해·러시아를 거쳐 혼춘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1936년 일본이 중국의 두만강 출해를 봉쇄한지 55년만의 일이어서 연변쪽에선 이를 두고 「해상실크로드가 열렸다」고 크게 흥분했다고 한다.
○중국측 의욕대단
두만강 일대의 변화속도는 빠르다. UNDP의 두만강 개발계획이 검토되고 있는 단계에서 이미 관련국과 기업들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대륙 진출의 기회를 봉쇄당했던 우리가 북핵문제 등으로 또 주춤거리다간 동북아경제권 형성에서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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