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입제도와 교육개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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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능시험에 이어 대학별 본고사도 끝났다. 새 대입제도의 골격이라 할 두 시험을 치르고나서 출제방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실감하게 되었다. 종래의 사지선다형 암기위주 출제방식에서 사고력·비판력·창의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당연하고 사소한 듯하지만 사실은 앞으로 교육목표·교육내용·교육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결정적 전기로 받아들여야 할 중대한 사건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문제점과 원인을 논하라」는 식의 논술고사가 이번 대부분 대학 본고사의 당락을 결정하는 문제가 되었을때,이런 식 출제방식은 당연하게도 내년도 고교교육의 중요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주관식 논술고사가 대학입시의 관건이 된다는 사실은 곧 중·고교의 교육내용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된다. 국어문제 뿐만 아니라 영어와 수학도 사고력·창의력을 묻는 출제경향을 보임으로써 이젠 종래의 교육방식으로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수능시험에 이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확인을 통해 새 대입제도는 잘만 하면 지금껏 잘못된 초·중등교육을 혁신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입제도 개편과 출제변화에서 교육개혁의 변화조짐을 보면서 개혁의 폭과 질을 높이기위해 어떤 후속조처를 해야할지 교육당국은 전문가들과 치밀하게 연구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시급히 검토해야 할 사항은 중등교육의 교육내용을 어떻게 하면 종래의 암기식·주입식 교육에서 토론과 대화를 통한 사고력·비판력·창의력 제고의 교육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점이다. 60여명이 꽉 들어찬 콩나물교실에서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토론할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가. 우리의 교사들은 이런 주제를 앞두고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유도할만큼의 충분한 소양과 인내력을 가지고 있는가. 20여 과목에 이르는 복잡하고도 세밀한 교과서를 그냥 버려둔채 자본주의 문제점을 논하고,흑백론·양비론의 극복방식을 토론하고만 있을 수 있는가.
대입제도의 출제와 평가방식은 자연 초·중·고 교육의 내용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기왕 변화를 유도하려면 보다 효과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중등교과서가 줄어들어야 한다. 구미 선진국도 7,8개 과목인데 우리는 어째서 20여 과목이어야 하는가. 국제화·세계화라는 시대분위기에 적응하는 교육이 되려면 교사의 교육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대화·토론을 통해 학생 스스로 문제와 답을 제기하고 풀어가는 선진교육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육환경을 개선할 교육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 막 일기 시작한 교육개혁의 기미를 폭넓게 확산시키고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선 대입제도 개편과 그에 따른 중등교육 혁신방안도 함께 연구되고 추진돼야 한다. 이 길이 곧 교육개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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