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변협의 장외대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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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한변협이 사법제도 발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안건에 대한 의견서를 발표하고,대법원 사법제도 발전위 연구실이 이를 반박하는 의견서를 냄으로써 대법원과 변협간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변협이 사법제도와 관련법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고 그를 공표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 수는 없다. 그것은 변협은 사회적 위상으로 볼 때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대법원 역시 마찬가지다. 사법행정을 직접 관장하고 있는 국가조직으로서 변협의 의견서에 대해 얼마든지 스스로의 「의견서」를 공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개적인 논의는 전체 사법개혁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전문가들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을 전국민적인 논의로 확대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과 변협간의 공방은 그 순서와 형식에 있어 문제가 있다. 사법개혁작업은 지난 11월에 구성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에 의해 현재 논의과정에 있다. 일부는 전체회의에서까지 결론이 난 것도 있으나 변협이 제기한 사항들은 아직 최종결론이 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발전위에서 의견을 더 개진하는 것이 순서다. 심의일정에 쫓긴다면 심의의 연기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변협은 그런 순서를 밟는데 앞서 대법원 사법위 연구실의 의견을 반박하는 의견서를 공개해 버렸고,이에 질세라 대법원 사법위 연구실서도 반박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는 모처럼 국민의 관심속에 발족한 사법제도발전위의 모양새를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마치 변협과 대법원연구실이 논의의 마당을 뛰쳐나가 「장외대결」을 벌이는 꼴이 돼버린 것이다.
사법제도의 개혁이 이런 식의 「성명전」으로 흘러가선 안된다. 사법제도발전위가 구성됐고,법조계를 포함한 각계 인사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일단은 장내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순서고 올바른 형식이다. 또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들은 하나같이 어느 한가지 논리로 개선책을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실천,이론과 현실의 조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는 복합적·중층적 성격의 문제들이기 때문에 언론 공방보다는 전문가들 사이의 심층적 논란이 먼저 요구된다.
사법개혁에 대한 논의가 장외대결로 돌출되게 된데는 심의가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는데도 원인이 있다. 사법제도발전위에 대법원장이 부의한 안거만도 26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는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장시간의 논의를 요하는 것들이다. 또 현재 구성된 위원들만으로는 의견수렴이 충분치 않은 부문도 수두룩하다. 이런 문제들을 2월16일까지 여섯차례의 회의를 통해 결론을 낸다는건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대법원으로서는 무엇보다 이 점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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