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연휴근무 소방관 울린 장난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큰일 났습니다.
한강로2가 K빌딩앞으로 구급차를 빨리 보내 주세요.』 구랍31일 자정무렵 서울용산소방서 상황실.
곧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자는 전후 사정을 설명할 틈도 없다는 듯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즉각 구급차가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30대 취객 2명.
이들은 『30분동안이나 기다렸는데도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며『집에까지 데려다주면 차비를 후하게 쳐주겠다』고 떼를 썼다.
『남들이 다 쉬는 연휴에도 24시간 비상근무를 하고 있는데 신고를 받고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가면 허위신고로 판명되기 일쑤였습니다.』 가뜩이나 일손부족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이 연말연시에 부쩍 늘어난 허위.장난.엉터리 신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서울성북경찰서의 경우 신정 연휴 기간동안 돈암동과 장위2동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12대의 소방차를 긴급 출동시켰으나 모두 허위였다.
허위신고에 속아 소방차가 불난 곳을 찾아 헤매는 동안 정작 딴 곳에서 「실제상황」이 벌어져 인명.재산피해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서울의 15개 소방서에는 서별로 하루 5백~1천여건씩 전화가걸려온다.
이중 대부분의 전화가 다이얼 착오나 어린이들의 장난전화로 실제 소방차와 구급차가 출동하는 것은 하루 20여건.
그나마 3분의 1가량은 현장 도착후 허위신고로 판명돼 출동한소방관들을 허탈케 한다.
『요즘은 허위신고를 하는 사람의 연기력이 향상돼 노련한 소방관들도 깜빡 속을 지경으로 어린이 장난전화는 줄어드는 반면 성인들의 엉터리신고가 늘어나니 더욱 큰 문제지요.』 서울남부소방서 尹福鉉소방사(33)는 문민시대 국민들의 건전한 시민의식을 아쉬워했다.
〈金秀憲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