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능인선원 지광스님, 올해 외부 회계감사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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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포이동에 있는 능인선원 원장인 지광(智光.54) 스님이 16일 외부 회계감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 석촌동 불광사가 5년 전부터 회계 감사를 해오고 있으나 신자 22만명의 초대형 사찰인 능인선원의 이 같은 '투명 경영' 의지는 특히 주목을 끈다.

지광 스님은 "정치자금 '차떼기' 등 세상은 매우 혼탁합니다. 지금까지 사찰도 속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죠. 세상을 맑게 할 책임이 있는 종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뜻에서 용단을 내렸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월급 1백50만원, 월 판공비 1백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한국 불교계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님'이다. 사실 서울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일하다 불가에 입문한 경력도 그렇고, 1984년 10여명과 함께 시작한 능인선원을 20년 만에 도심의 거대 사찰로 키워낸 저력도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날 말을 삼갔던 '출가의 연'을 공개했다. 30대 초반 기자로 일할 당시 신군부에 반대하는 성명에 참여하는 바람에 정권에 찍혀 지리산 산골로 도망쳤다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됐다는 것이다.

"원주 출신인 저는 사실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불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죠. 당시 토굴에서 만난 스님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바깥에선 매일 피가 터지는데, 스님들은 깊은 산 속에서 무엇하는 거냐고 따졌죠. 역사 의식을 갖고 세상에 동참하는 게 바른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리산.덕유산 토굴에서 만난 많은 선승과 토론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번뇌가 없는 평정심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속에서 많은 불경을 읽으며 불교의 세계에 심취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권유로 84년 서울에 올라와 서초동 무지개 상가에 사글세 선방 능인선원을 열었다. 그리고 95년 현재의 자리로 이사했다.

"처음엔 포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참선하는 선방을 지향했거든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만큼 불교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컸었나 봅니다. 산중 생활.도인 등에 대한 얘기를 하니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이런 겸손한 말과 달리 스님은 불교의 대중화.생활화를 위해 애써왔다. 예컨대 철야정진 기도 개설, 합창단 창단, 사회복지관 설립, 불교대학 개교, 결혼상담실 운영 등 불교에 사업적 마인드를 접목했다.

동국대 석사 출신인 지광 스님은 올해 서울대 종교학과 석.박사과정에 입학한다. 불교 대학원 착공, 북한산 국령사 복원, 포교당 두 곳 추가, 방콕.뉴욕 법당 신설 등도 올해 추진할 계획이다.'한국에서 가장 바쁜 스님'이라는 별명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한국 불교의 모든 걸 담은 영어 논문을 쓸 겁니다. 이젠 한국 불교도 미국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최근 뉴욕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달라이라마의 뉴욕 센트럴파크 법회에 몰린 열기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현지 관계자는 세계 불교시장을 달라이라마와 틱낫한이 양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세계 불교계를 뚫는 게 제 마지막 희망입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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