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인선내용 탐색전/「이회창내각」 발표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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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총리 제청전에 당사자들에 이미 통보/가신그룹 표정밝아 요직 대거 포진 암시/관료 발탁설에 내부승진 기대/기획원/“포탄 악재” 그래도 유임 점쳐/국방부
지난 16일 총리경질이후 뜸들여오던 개각이 닷새만인 21일 오후 드디어 뚜껑이 열렸다. 정·관가는 새로 구성된 이회창 내각의 면면에 의외의 인물이 많은 「의표를 찌르는 YS식 인사」에 다시 놀라움을 표시하는 모습이다. 이날 오전 시내와 과천의 정부종합청사는 뚜껑이 열리는 순간까지도 인사내용이 그 윤곽을 드러내지 않아 부처마다 일손을 놓은채 서로 수소문하는 등 술렁댔다.
▷청와대·총리실◁
김영삼대통령과 이 총리의 협의가 끝난 오전 10시30분. 김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본관으로 향하던 박관용 비서실장은 여전히 『모르겠다』며 함구.
다만 이경식 경제부총리 후임에 기업인 출신은 아닌 것 같다고 여운.
박 실장은 이에 앞서 실무작업을 지휘해온 김혁규 사정1비서관과 실장실에서 발표에 따른 명분·논리 등을 최종 정리.
○…개각 발표를 앞둔 청와대는 이날 오전 각 언론이 개각 관련 하마평 보도를 하지 않자 적이 만족스런 표정들.
마치 내용보다 「보안」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인선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철벽보안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입각 대상자에 대한 통보가 거의 끝난 상태에서도 『교체대상도 발표시간까지는 모른다』는 말로 일관.
그러나 김 대통령과 이 총리가 개각인선을 협의한다는 오전 9시30분쯤에는 이미 통보절차까지도 끝난 것으로 알려져 총리의 제청권 행사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수순임을 반증.
○…개각 발표전 소위 가신그룹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김 대통령 직계사단의 당정 요직 포진을 강력히 암시.
한 상도동 관계자는 강력한 개혁추진과 책임정치구현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자신감을 표시해 인사과정에 특별한 신호가 있었음을 내비치기도.
다른 일각에선 가신그룹이 이같은 동정에 자칫 분위기가 경색될지 모른다며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지만 기세에 눌려 쉬쉬하는 상태.
○…김 대통령은 개각 전야에 있은 민자당 의원·지구당 위원장 만찬에서 「세계의 혁명적 변화에 적응」을 개각배경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모두 하나가 돼 제2의 건국,제2의 광복을 위한 큰 전진을 해 나가자』고 의미를 부여.
이같은 개각이유는 이번 개각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 관련한 쌀개방 문책이 아님을 강조하는 동시에 황인성내각의 「발전적 해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되는 부분.
○발전적 해체 강조
김 대통령은 또 『그러기 위해 민자당과 정부가 하나가 돼 우리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자』고 했는데 참석자들은 이러한 언명이 내각개편의 폭이 상당하며 인선기준으로 국제화·미래화 감각이 크게 고려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평가.
김 대통령이 김종필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의 단합을 역설,김 대표체제 유지를 분명히 하자 김 대표는 『내년에는 더욱 단합해 신한국 건설을 선두에서 영도하는 총재님을 뒷받침하는데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다짐.
○…이번 개각과정은 이회창총리도 보안성에 있어선 김영삼대통령과 쌍벽을 이룬다는 사실을 입증.
이 총리는 17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헌법규정대로 하겠다』며 각료제청권을 행사할 뜻을 내비쳤는데 그후 21일 오전까지 누구와 어떻게 상의를 했는지,청와대 인선안을 통보받았는지,자기 의견을 김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 등에 대해 측근들에게도 일절 함구.
이 총리는 21일 오전 김 대통령을 만나 「최종협의」했는데 20일께 인선이 끝나고 통보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돼 제청이 있었다면 그전에 이루어졌어야 한다는게 주변의 분석.
총리실의 한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인 사실은 모르지만 청와대의 분위기로 보면 이 총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자기 의견을 김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 같다』고만 언급.
이 총리는 20일 오후 5시쯤 곧바로 구기동 자택으로 퇴근한후 21일 오전 8시30분까지 외부인사 방문을 사절한채 칩거.
자택에는 서대문경찰서 소속 의경 두명이 1조가 돼 보도진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
▷경제부처◁
○…그동안 이경식부총리가 바뀌는 것으로 듣고 있던 경제기획원은 개각을 하루 앞둔 20일 오후 이 부총리가 주요사안을 스스로 찾아 결재하는가 하면 21일 오전에도 예정대로 군부대 위문을 떠나자 이를 「최종정리」로 해석.
그런가하면 8명이나 되는 기획원 1급 간부들은 이번 개각의 포인트가 국제화·개방화에 적절한 인물 고르기와 경제회복에 맞춰져 있는 만큼 학자보다는 전문관료가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차관승진 등의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모습들.
농림수산부 직원들은 「쌀」이 개각의 직접적인 요인이 됐던 만큼 허신행장관의 경질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허 장관 마음정리
허 장관도 20일 낮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농정의 최고책임자라기보다는 「제3자적」 입장에서 『향후 농정은 절대로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이미 마음을 정리한듯한 태도.
워낙 표정이 얼굴에 잘 나타나지 않는 홍재형 재무장관은 거취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아 재무부 관리들은 매우 궁금해하는 모습.
21일 홍 장관이 참석하기로 한 외부모임이 몇건 있었으나 모임 주최측이 「알아서」 취소했다는 후문.
교통부 직원들의 유임 희망과는 달리 경제부총리 기용설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는 정재석장관은 21일 오전 평소보다 다소 늦은 9시쯤 출근.
특히 출근하자마자 「교통부장관」 명의의 연하장 4백장을 각계에 보낼 것을 지시해 주변에서는 『유임이 아니냐』고 점치고 있으나 경륜과 소신,대통령의 신임 등을 고려할 때 개각 명단이 발표될 때까지 영전·유임여부를 속단할 수 없다는 반응.
▷비경제부처◁
○…한완상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21일 오전 간부회의를 소집,업무를 일일이 챙기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한 부총리는 회의에서 미­북한 비공식 막후접촉 결과 및 북한 동향 등을 보고받고 북한 핵문제 대책을 숙의한뒤 점심 때는 각 언론사 통일·북한부장들과 오찬을 함께 했으며 오후 4시에는 모언론사와의 인터뷰도 가질 예정.
국방부는 최근의 포탄수입 사기사건까지 겹쳐 우울한 분위기에서 개각발표만을 기다리는 상태.
권영해장관은 이날 예정돼 있던 현대정공 창원공장의 구난차명명식 행사일정을 취소하고 오전부터 국방부 청사 2층의 집무실에서 대기.
국방부의 몇몇 부서들도 연말이 겹치면서 일정을 잡아뒀던 저녁모임들을 취소하고 장관의 경질에 대비하는 등 조심하는 분위기.
권 장관의 유임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들 『최근의 포탄도입 사기사건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리는 대신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벌써 경질하겠느냐』며 희망을 피력.
한 고위관계자는 『장관 취임이후 개혁을 위한 많은 조치들이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고 궤도에 오르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데 중간에서 사람을 갈아 치우겠느냐』면서 『문민장관이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정지작업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1년 정도는 권 장관이 유임해야 한다』고 강조.
교육부는 개각발표 전날인 20일 오후 오병문장관이 예정에 없던 실·국장 회의를 소집,『누가 새 장관으로 오더라도 동요없이 맡은 임무에 충실하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을 놓고 「경질을 암시한 것」이라는 측과 「만약의 경질을 대비한 의례적 얘기」라는 관측이 엇갈리기도.
보사부 직원들은 송정숙장관의 경질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후임 장관의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약사법 개정 홍역을 치른 직원들은 이번만은 지역이나 여성안배가 아닌 힘있는 장관(?)이 인선되길 기대하는 분위기.
○최 장관 거취 주목
○…자녀 특혜입학·부동산 투기혐의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최창윤 총무처장관의 경질설이 나돌자 주변에서도 그의 다음 거취에 관심을 집중.
그것은 최 장관이 김 대통령의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지낸데다 무리없는 일처리로 청와대·당·국회·내각(장관 두차례 역임) 등을 거치는 등 관운이 남달랐기 때문.
김덕룡 정무1장관은 이날 아침 지역구(서초을)내 창진교회에서 구의원·목회자 등과 성탄축하 조찬예배를 드린후 당 의원들과 함께 마포 교남소망의 집을 방문.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없이 간부회의 등 공식일정을 진행.
오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막판에 바뀔 수도 있는게 김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어서 누구도 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만 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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