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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잘 모시기(선진교육개혁: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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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 좌우한다/처우개선 과감히… 인재유치 “비상”/불선 유치원 선생도 대학원 졸업생/미,연수받으면 연봉 올려 질향상
교사의 지위가 낮은 것은 선진국 공통의 고민이다. 낮은 사회적 지위는 교사의 질 저하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직업군은 다양하다. 시대변화에 따라 직업의 선호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직업은 몰라도 교직은 예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실력과 소명감으로 무장한 유능한 인재들이 변함없이 교단을 지켜야 나라가 살 것이기 때문이다. 교직을 위한 국가적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지원만으로는 안된다. 이제 교사도 경쟁력을 평가받아야 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70년대 후반 우리 사회가 산업화를 위해 팽창하던 시절 많은 사범대 졸업생들이 무역회사 등 다른 인기직업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 결과 초·중등학교에서 지금 40세 안팎의 중견 남자교사는 다른 나이대에 비해 매우 희귀해졌다. 이로인한 교육상 손실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의 교사정책은 과거의 우를 오히려 만성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20년 근속한 고참교사(29호봉)의 본봉이 68만6천5백원인 현실에서 유망한 젊은이들에게 교직을 권장하기는 아무래도 낯부끄럽다. 교사의 질은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 교육수준은 교사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교사정책은 교육개혁의 핵심에 놓여 있다. 파리에 본부를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담당 부국장 스킬 벡 박사의 말.
『OECD 회원국들도 교사와 일반 샐러리맨간의 봉급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추세를 걱정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교사 지원을 꺼리고 있다. 그래서 교사수준을 높이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립 초·중등학교 교사 평균 연봉은 80년 2만8천8백만달러(약 2천3백만원)에서 92년엔 3만4천9백만달러(약 2천7백90만원) 수준으로 「회복」됐다(92년 달러화 기준). 72년 3만3천달러이던 연봉이 80년에 바닥권으로 떨어지자 위기를 느낀 연방 및 각 주정부가 교육개혁을 외치고 나섰다. 덕분에 교사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중 하나인 봉급수준이 상승세를 보였고 교사 지망생의 대입학력고사(SAT)·대학원입학자격고사(GRE) 성적 등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들도 함께 호전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에서 교육경제학 박사과정을 이수중인 김광조 교육부 서기관은 이 사례를 들며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팔 난다는 평범한 진리가 확인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미국 교사의 봉급수준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뉴욕시에서 근무하는 경력 10년의 중견교사 연봉은 4만5천달러 가량. 높은 물가 때문에 이 수입으로 가정을 제대로 꾸려가기는 어렵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가 아닌 교사는 방과후 영어 과외·택시운전이나 방학중의 캠프 지도 등으로 부수입을 올리는 풍토가 보편화돼 있다.
○휴가때 학점 따야
교육당국은 교사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교사연수를 연봉수준과 연계시켰다. 또 대부분의 주에서 안식년제도를 두고 있다.
뉴욕 제189중학교 교사 이영자씨(교포)는 한국에 있을 때 학생수가 무려 1백3명인 학급의 담임을 했던 씁쓸한 추억을 갖고 있다. 이씨의 설명.
『이곳의 교사들은 만 7년을 근무하면 6개월간의 유급 안식휴가를 얻게 됩니다. 어떤 교사는 이때 휴가를 가지 않고 14년째에 몰아 1년을 쉬기도 하지요. 안식휴가라고 그냥 노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간동안 대학에서 8학점을 따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요. 아무 대학,어떤 전공이라도 관계없습니다. 에어로빅체조 수강으로 8학점을 채운 교사도 있지요. 대학공부가 싫다면 외국여행을 해도 인정해줍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여행하되,여행기간은 합쳐서 3개월을 넘어야 합니다. 다녀와서 여행리포트를 학교에 내면 되지요.』
뉴욕 제11국민학교 교장 애니모여니스 박사는 『교사들에겐 연수·워크숍 등 재교육 기회가 많다. 재교육 참여 실적은 반드시 연봉 사정에 반영된다』며 『나이 든 교사들은 최신 컴퓨터 기법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연수에 특히 열심』이라고 말했다.
미국 학교의 교장선생님 위상은 한마디로 「권한 큰 사환」이다.
○생활비까지 제공
교장은 교사의 해고·임용에 큰 재량권을 갖지만 교내의 온갖 잡일도 도맡고 있다. 정규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학생이 다치면 교장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퇴근시간(보통 오후 3시) 이후에는 교사들을 학교에 붙잡아 둘 수 없다. 업무 구분이 명확한 미국의 일문화 때문이라 우리 실정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는 교육법 조항(75조)을 빌미로 관료화된 일방통행식 학교행정을 일삼는 한국의 많은 교장들과는 좋은 비교가 된다.
프랑스는 최근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교사를 충원해 왔다. 그 결과 교사의 질이 들쭉날쭉이라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91년 프랑스정부는 2년과정의 교사양성전문대학원(IUFM) 졸업자만이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일원화했다. 일반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다시 대학원 과정을 거쳐 교사로 임명받도록 한 IUFM 제도는 프랑스가 기울인 교육개혁 노력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대목이다.
IUFM에 입학한 학생에게는 장학금·생활비가 제공된다. 1학년때는 연 7만프랑(약 9백80만원)을 받는다. 2학년때는 일선학교에서 주 1회 현장실습을 하게 되며 실습학교로부터 현직 교사 수준의 연수비가 따로 나온다.
프랑스의 교사 봉급은 월 6천프랑으로 최저생계비 수준이었다. 2년전 대대적인 교사시위가 벌어진뒤 간신히 8천프랑(약 1백12만원)으로 인상됐다.
볼로뉴 국민학교에서 실습중인 IUFM 2년생 드루양(25)은 『안정적인 취업이 보장되는데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낮은 봉급이라도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미,능력급제 검토
15%에 달하는 프랑스 실업률이 교직에의 선호도를 높이고 있다.
처우개선 정책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은 교사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선진국들도 자격기준 강화·수습교사제·평가제 등 일선 교사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여러제도를 시행하거나 모색중이다. 미국은 주에 따라 능력급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교직의 온갖 장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1년에 두차례 방학기간이 주어지는 평생직장」이란 지극히 교육외적인 매력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배고프고 자부심도 없지만 그럭저럭 편하니까…」라는 무기력한 사고방식을 가진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지 않은지 심각하게 반성할 시점이다.
사범대학 졸업 또는 교직과정 이수만으로 손쉽게 주어지는 교사자격증,일단 교사로 임용되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풍토속에서 국제경쟁력은 제쳐놓더라도 기본적인 풍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자격증 기준강화·수습교사제·근무평정의 실질화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희선교수(인천대)는 이에 더해 『수석교사제를 설치해 현재 교사­교감­교장으로 된 교직체계를 관리직·전문교사직으로 나눔으로써 교사들의 생애 목표를 2원화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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