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울고 싶어라”/수사권 대폭축소에 곤혹스런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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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경에도 없는 징역형 규정 가혹”/“여야 정치흥정에 피해크다” 불만
7일 밤 안기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 처벌규정 등이 담긴 안기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안기부 지휘부는 긴급히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법개정에 대한 안기부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문제였다.
조영호 안기부 공보관은 8일 아침 정리된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안기부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개혁·자정노력을 하면서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만 진력해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개정된 법에 따라 충실하게 소임을 다할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이 부분을 덧붙였다.
『다만 수사권 축소로 대공수사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대공업무에 허점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휘부의 생각과 분위기가 함축된 이 말에는 주목할만한 대목이 두군데 있다. 하나는 「신정부 출범이후의 변화」를 강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공업무 완수」의 결의다.
안기부 관계자들은 이번 국회에서 가해진 수술의 강도에 대해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다.
특히 수사권같은데서 많이 양보(안기부측 표현)했는데도 다른 수사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 인권보호위반 처벌이 들어간 것은 안기부에 대한 차별적 공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조만후 안기부장 법률특보는 이렇게 국회를 성토했다. 『아무리 30년 업보라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안기부가 옛날엔 잘못이 많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완전히 달라졌는데 왜 대접은 바뀐게 없나. 야속하다.』
조 특보는 『변호인 가족의 피의자 접견권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절차를 어기는데 대해 1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하는건 가혹하다. 검찰·경찰도 처벌규정은 없지 않은가』라고 반발했다.
그는 『쌀문제로 정국이 시끄러우니까 여야가 흥정으로 안기부법을 졸속 처리했다』고 비난했다.
조 특보는 자신이 88년 통일민주당 의원시절 국회법률 개폐특위에서 안기부법 개정을 다룰 때는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진 않았다고 했다.
지휘부는 수사권중에서 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불고지죄가 빠진데 대해선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양보안속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공수사 실무진의 반응은 다르다고 한다. 이것이 작아보이지만 실제 수사에 있어선 중요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관계자는 그들의 의견을 전했다.
『사람들은 간첩이라고하면 북에서 내려온 이들만 생각하는데 더 심각한 것은 자생·고정간첩이다. 이들은 은근히 북한을 고무·찬양한다.
그러니 이 부분은 간첩수사의 긴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안기부는 바로 이런 분위기를 깔고 8일 발표한 입장에서 「배전의 노력」과 「대공업무 완수」를 강조한 것이다. 안기부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정보기관으로서의 존재를 웅변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안기부는 이제 말로만이 아니라 제도에 있어서도 제2의 탄생을 기록하게 됐다. 불만의 표정과 반발의 목소리가 많지만 개혁과 변화라는 시대의 파도는 이를 집어삼키고 있다.
7일 오후 국회 정치관계법 특위의 협상장소에 뛰어들어간 조 특보는 남산(안기부)에서 전화를 걸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국회에서 안기부의 이빨을 다 빼려하고 있다. 처벌만 안기고 실권은 다 가져갔다』 수술대에 누운 「안기부」가 내뱉은 마지막 신음같은 것이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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