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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까지 몸싸움… 난장판 국회/날치기 구태 재연된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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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황 부의장 30여분간 소동에 휘말려 “탈진”/뒷문입장 3분만에 통과/농수산위/소란 틈타 기습상정 처리/재무위/예산통과 실패… 민자 침울,민주 승전무드
여야의 몸싸움속에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시한인 2일을 넘기게 되자 민주당은 승전 분위기인 반면,민자당은 침울한 상태.
▷청와대등 반응◁
○…청와대는 여당의 국회 본회의 예산안 강행처리가 욕만 실컷 먹은채 실패로 돌아가자 낭패한 표정이 역력.
한 관계자는 3일 『정말 모양이 안좋더라』면서 『그래도 어차피 시작했으면 제대로나 할 것인지…』라고 민자당의 일처리를 개탄.
다른 관계자는 여당의 시도가 실패한 것은 이만섭 국회의장의 몸사리기와 함께 민정·공화계의 비협조적 자세도 한 요인이라는 일부의 지적을 긍정.
황낙주 국회 부의장은 『허리·가슴이 결리고 아프며 얼굴에는 손톱자국이 났지만 오전에 한의사에게 침을 한방 맞고 국회에 나가 나라를 생각하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
황 부의장은 이 의장을 겨냥 『좋은 일은 자기가 다하고 궂은 일은(나에게) 떠넘겼다』면서 『그 바람에 야당 의원들이 표적을 나에게만 집중해 다치기까지 했다』고 피력.
황명수 민자당 사무총장도 『이만섭 그 사람 조직원도 아니다. 비겁한 사람』이라고 비난.
또 다른 민주계 의원은 『민정계의 수수방관적 태도 때문에 황낙주부의장이 본회의장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고 강행처리 무산에 대한 민정계 의원들이 책임론을 제기.
이에 비해 민정계 의원들은 『문민정부라고 그렇게 강조하더니만 이제는 과거의 우리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침.
한편 민주당 의원·보좌관들은 『민자당내 민정·공화계가 대부분 움직이지 않았다』며 이를 저지성공의 첫째 요인으로 꼽는 모습.
▷본회의장◁
○…이만섭의장으로부터 대리사회 지명을 받은 황낙주부의장이 이날 밤 11시40분쯤 민자당 의원 및 보좌관·국회 경위 등 수십명에 둘러싸여 본회의장에 입장,1차 강행처리를 시도했으나 대기하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의해 회의장 밖으로 떠밀려 나가는 바람에 실패했다.
황 부의장이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협·최정승·채영석의원 등 민주당 의원 40여명이 『막아라』 『어디를 들어오느냐』고 고함 지르며 한꺼번에 달려들어 황 부의장을 호위하고 있던 박희부·구천서의원 등 민자당 의원들과 몸싸움이 시작됐다. 황 부의장이 밀고 당기기의 와중에 『본회의를 개회한다』고 날치기를 시도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육탄전을 펼치며 황 부의장의 입을 틀어막고 멱살을 잡는 바람에 『의사일정…』까지만 말한 상태에서 좌절됐다.
황 부의장이 밀려나간뒤 민주당 의원들은 『이게 민주주의냐,차라리 길거리에서 싸우자』(이부영의원),『5,6공보다 더하다』(박계동의원)는 등 큰소리로 민자당측을 비난했고 급기야 이협·박광태의원 등의 선창에 따라 『문민 독재 물러가라』 『김영삼 독재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들이 구호를 외칠 때 민자당 의원들은 한 두명이 『그 정도 해둬라』고 말했을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30여분간을 떠밀려 다닌 황 부의장은 본회의장에서 밀려난뒤 1층 민자당 이성호 수석부총무실로 피신,탈진해 핼쓱해진 얼굴로 소파에 누워버렸는데 이 바람에 날치기 재시도가 불가능해져 민자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을 퇴장.
▷예결위◁
○…2일 오후 10시13분쯤 민자당 소속 예결위원들에 둘러싸여 김중위 예결위원장이 예결위 회의장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민주당 의원들과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하는 사이에 의장석 왼쪽 문을 통해 민자당의 김운환간사가 들어와 10시17분 회의장 뒤편 민자당 의원들 속에서 회의를 속개.
이윤수의원이 손으로 김 간사의 입을 막는 등 야당 의원들이 몸싸움으로 방청석에서는 『이의 없습니까』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곧 바로 퇴장.
민자당 의원들도 한동안 내년도 예산안이 이때 통과된 것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켰다.
민주당의 김병오간사가 『민자당은 「이의 없느냐」는 말만 하고는 통과된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개가 봐도 웃을 일이다. 그러나 김영삼정부의 문민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가자』고 한뒤에야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
▷농림수산·재무위◁
○…2일 오후 추곡수매 동의안을 다룬 농림수산위와 세입예산과 관련한 세법 개정안을 다룬 재무위에서는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국회에서의 첫 날치기 통과로 여야가 격렬한 공방전.
추곡수매 동의안과 3개 법안이 상정된 농림수산위에서는 오후 2시30분쯤 정시채위원장이 뒷문으로 들어와 민자당 의석 끝부분에서 『성원이 되었으므로 개회를 선포…』라고 사회를 시작하면서 파란.
이 순간 민주당의 김영진의원이 정 위원장에게 달려가 덮쳤고 최낙도의원이 정 위원장의 입을 틀어막고 민주당·국민당 의원들이 정 위원장의 주위를 에워싼뒤 이를 제지하려는 민자당 의원들과 격렬하게 몸싸움.
또 재무위에서는 세법 개정안을 싸고 여야가 3시간이나 설전을 거듭하다 오후 5시25분쯤 노인환위원장이 장내 소란을 틈타 『29개 법안·동의안을 일괄 상정한다. 이의 있느냐』고 기습.
이에 민자당 의원들의 『동의한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사봉을 두들겼으며 허를 찔린 민주당 의원들은 『날치기다』 『무효다』고 소리치며 일부 의원들이 노 위원장을 향해 돌진,잠시 소동.
▷성명전◁
○…2일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날치기 시도와 저지 등으로 감정이 격화되자 민주당은 원색적 용어를 쓴 성명들을 잇따라 쏟아냈는데 민자당측에서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지적.
민주당의 박지원대변인은 2일 오전 김종필 민자당 대표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대책위 구성제의에 대해 「파렴치한 속임수」라는 논평을 낸데 이어 이날 오후 예결위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자 『김영삼정권의 조종이 울렸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이 대통령만 되면 독재자의 길로 가는 기구한 운명의 나라』 등의 표현을 사용.
박 대변인은 정시채 농림수산위원장을 「농민학살범」,노인환 재무위원장을 「경제파탄범」,김운환 예결위 민자당 간사를 「국민살해범」,황낙주부의장을 「국가 패망미수범」이라고 각각 비난.
▷민자당◁
○…민자당은 당초 2일 밤이나 3일 새벽에 본회의장에서의 강행처리까지 깨끗하게(?) 마무리지을 예정이었으나 황 부의장이 거의 실신상태로 더 이상 사회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을 맞아 일단 포기키로 결정. 김종필대표를 비롯한 고위당직자들은 긴급 구수회의끝에 이같이 결정하고 자정을 넘긴 3일 0시10분쯤 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철수시켜 1층 의원 휴게실에서 비공개로 의원간담회를 갖고 해산했다.
강재섭대변인은 성명을 발표,『그러나 야당은 전술적으로 의도적인 파행을 노리며 국회를 정략의 도구로 삼아 강제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강력히 야당을 비난.
▷민주당◁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2일 최고회의를 가진뒤 오후 8시45분쯤 기자들과 만나 『날치기하는 순간 정치 9단이 1단으로 됐고,문민정부는 군사정권시대로 돌아갔다. 이제 더 이상 이야기가 필요없다고 최고회의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
이 대표는 『공화당 때도 날치기하면 부끄러운줄 알았는데 날치기한 사람들이 오히려 야당을 욕하다니 그렇게 후안무치할 수 있느냐』며 『장내가 안되면 장외투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허남진·박영수·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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