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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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41) 지상이 소리치며 오카다의 몸을 막아섰다.
『그만 해!』 그것은 일본말이 아니었다.지상의 눈에서 불이 흐르고 있었다.두 사람의 눈길이 순간 허공에서얽혔다.
오카다의 어깨를 움켜잡은 지상이 그의 몸을 앞뒤로 흔들며 소리쳤다. 『다 죽여 버릴 거야.』 우루루 몰려든 조선 징용공들이 지상을 껴안듯이 오카다에게서 떼어놓았다.자신을 둘러싼 징용공들을 둘러보면서 오카다가 주춤주춤 물러섰다.자신의 몸을 막고서 있는 사람의 어깨에 이마를 박으며 지상이 울부짖듯 소리쳤다. 『다 죽일 거야.다아….』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눈을 감은채 지상은 얼마를 그렇게 있었다.공원들이 일손을 놓은 고요속으로 오카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구두 밑바닥의 징이 마루바닥에 닿는 소리.그 절름거리는 발소리.한번은 크게 한번은 작게…그 발소리 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상은 들었다.
누군가가 지상을 떼어놓으며 어깨를 움켜쥐었다.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정씨였다.그가 말했다.
『됐다.나 괜찮다.』 피딱지가 말라붙고 부어오른 입술을 윗니로 깨물며 지상이 천장을 쳐다보았다.말없이 눈을 감는 그에게 정씨가 말했다.
『미안하다.네가 그꼴이 되어서 들어오는걸 보니 그냥 속에서 뭐가 욱하고 올라오는데,밸이 틀려올라오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됐다,조용히 넘어가자는 네 맘을 몰라서그랬던 게 아니다.미안하게 됐구나.』 등뒤에서 모여 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다음에 보자 하며 나가던데…오카다가.』 『지랄허고 자빠졌다.다음에 보자는 놈 무서울 거 없는기여.고거야 다 썩은 동아줄이다 그말이여.담번에 또 요랬다간,그땐 그냥 우리가 달랑 들어다가 그놈 새끼 똥을 퍼멕여 버려.』 『허이고.이불 쓰고 도리질하고 있네.언제는?오카다가 있을 때는 뭐하고 이제 와서 큰소리는.』 『자네가 시방 내 복장을 긁겠다는 거여 뭐시여? 요 순 눈꼽쟁이 겉은 새끼가.』 지상이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끼리 또 왜들 이럽니까.돌아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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