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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예산과 통제기능(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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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마다 국회 예산심의에서 안기부의 예산으로 말성이 일고 있다. 올해도 안기부 예산의 공개여부와 그 통제방법을 둘러싸고 여야간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안기부 예산은 지금껏 총액이고 세부내역이고 간에 밝혀진 일이 없다. 경제기획원 예비비란 이름으로,또는 타부처의 정보비속에 묻어 예산을 편성하고 지출내용 역시 밝히지 않기 때문에 행정부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
이런 안기부 예산을 놓고 야당측은 해마다 총액규모라도 공개해야 하며 국회의 비공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고,정부·여당은 이를 반대해왔다. 올해 김영삼대통령 정부가 들어선후 여야는 국회에 정보위를 신설해 여기서 안기부 예산을 통제하게 하자는 원칙론에는 합의하고 있으나 통제방식을 놓고는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썽 많고 해묵은 안기부 예산문제도 이젠 교통정리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체제 아래 30년이나 묵인·방치돼온 이 문제도 문민시대답게 개선·개혁돼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처럼 안기부 예산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아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그동안 독재정권하에서 안기부가 무수한 정치공작·인권유린·월권행위 등을 자행한 배경에는 예산에 대한 통제가 없었던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안기부 예산이 본연의 활동과는 상관없이 정권안보용으로,집권자의 정치자금용으로 편성·사용됐던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런 현상이 문민시대에 와서도 되풀이 돼서는 안됨은 물론이다. 국회 정보위가 신설되면 정보기관으로서의 특수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통제는 제도화하는게 마땅하다.
또 하나의 쟁점인 안기부 예산의 공개여부에 대해 우리는 원칙적으로 공개해서 안된다고 생각한다. 야당은 총액규모라도 밝혀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 경우 정보기관의 활동폭이나 규모 또는 총체적 정보능력 등이 대외적으로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주요 선진국들 역시 정보기관의 예산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다. 국회 정보위 등에서 안기부 예산을 심의할 때도 정보유출이 없도록 하는 신중한 보안장치를 반드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산문제를 포함해 안기부의 위상·기능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권의 민주성·도덕성에 대한 신뢰문제와 관련된다고 본다. 정권에 대한 신뢰가 높다면 안기부에 대한 통제가 좀 느슨해도 국민이 용인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사회가 보다 엄격한 통제를 요구할 것이다. 어떤 통제방식이 제도적으로 가장 옳으냐 하는 문제에 정답이 있긴 어렵다.
그리고 안기부에 대한 국회통제는 야당의 신뢰성과도 관련이 있다. 야당이 믿을만하고 비밀유지에 안심할 수 있다면 국회통제쪽을 넓히는데 정부·여당이 인색할 필요가 없다. 여야는 이런 점을 두루 헤아려 안기부 문제로 무익한 대립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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