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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아테네] 10. 유도 이원희(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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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3.용인대 4)는 아테네 올림픽의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다.

빗당겨치기, 허벅다리 후리기, 업어치기, 배대뒤치기…. 이런 큰 기술들을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번개처럼 구사한다. 빠르기와 유연성, 그리고 순간 파워가 인간의 경지를 넘어가 있다.

60㎏대이던 고교(보성고) 시절 무제한급에서도 져본 일이 없을 정도의 괴력. 거기에 잡기술도 능해 임기응변에도 도사다. 그래서 "분석할수록 더욱 상대하기 어려운 타고난 유도선수"(국가대표팀 전기영 코치)라는 말을 듣는다.

*** 괴력에 임기응변 뛰어나

그는 요즘 종종 무릎 꿇고 명상을 한다. 불 꺼진 태릉선수촌 유도장 필승관 매트의 얼음장 같은 한기가 그의 정신을 맑게 해준다.

2003년을 되돌아본다. 재작년 73㎏급으로 체급을 올린 이원희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한 8개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했다. 또 48연승으로 국내 최다연승기록을 깼고, 이 중 43승을 한판승으로 해치웠다. 그런 실력 때문에 4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일찌감치 한국마사회에 스카우트됐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12월 국내 연승기록인 47연승을 세우자마자 미국의 노장 로저 페드로(34)에게 졌다.

그 뒤 이원희는 며칠간 잠을 못 이뤘다. 패배의 치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욕심이 내 손발을 묶어 두었다"라는 자책 때문이었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유도. 그것이 이원희의 강점이다.

"하지만 연승행진에 대한 찬사에 취해 그때도 반드시 멋진 한판승으로 이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몸과 마음의 수양'이라는 유도의 본질을 잠시 잊었었다"고 그는 반성하고 있다.

*** 숙적 페드로에 설욕 다짐

이원희는 타고난 무인(武人)이다. 권투를 즐겼던 그의 아버지 이상만(58)씨는 나이 서른다섯에 본 첫아들을 강하게 키웠다.

어릴 적부터 축구.수영 등 여러 운동을 시켰다. 담력을 키워주려고 수심 70m가 넘는 검푸른 울릉도 앞바다로 데려가 수영을 시키기도 했다.

이원희도 그걸 즐겼다. 태어날 때부터 유연했고 순발력이 뛰어났다. 유치원 때 팔굽혀 펴기 70개, 앉았다 일어서기를 3백개씩 했다.

홍릉초등학교 시절에는 중국 무술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동작을 연구해 친구들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원희가 선배들을 때려 눕히고 친구들에게 '대장'으로 불리며 기고만장하자 아버지는 그를 도장에 데려갔다. 그가 유도를 시작한 동기다.

그는 숙적 페드로를 아테네에서 필경 다시 만난다. 그것이 이원희의 투지를 더 불타오르게 한다. 그에게 무너졌던 다른 강자들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들은 최고수 이원희의 기술을 철저하게 연구할 것이다. 모두 다 이원희가 물리쳐야 할 적들이다.

"아테네에서 세계 최고의 유도를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하는 국가대표 권성세 감독의 말에 이원희는 "이겼을 때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교훈을 패배에서 배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성호준 기자<karis@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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