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열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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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현미밥·솔잎으로 아침공양 마친뒤/한동안 누워있다가 앉아서 눈감아
○…성철 큰 스님의 열반 이틀째를 맞아 해인사에는 전국사찰의 스님·제자 등 5백여명과 일반신도 1천여명이 조문차 몰려 들어 참배.
분향소가 차려진 승가대학의 강당인 궁현당앞에는 김영삼대통령의 대형조화를 비롯,노태우 전 대통령·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 등 각계에서 보내온 30여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으나 해인사측은 그후의 공식적인 조화는 사절.
○…성철 스님의 장례식 절차와 방법 등을 의논하기 위해 해인사에는 5일 오전 8시부터 조계종 서의현 총무원장과 조계종원로회의 의장인 송서암스님·해인사부방장 혜암스님·주지 법전스님·율주승인 일타스님 등 원로스님 10여명이 모여 산중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장례일정을 확정.
이날 회의에서 성철 종정의 장례식은 10일 오전 11시부터 영결행사에 들어가 오후 2시 영결식장에서 2㎞정도 떨어진 가야산 연화대에 마련된 다비장에서 다비식을 갖기로 확정하고 장의위원장에는 서의현 총무원장,집행위원장에는 일타스님을 각각 임명.
○…성철스님은 열반에 들기 직전인 4일 새벽에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거소인 퇴설당에서 깨어나 참선과 정진·새벽예불을 마쳤고 오전 6시 현미밥과 솔잎·콩 등으로 아침공양까지 했다고 상좌인 원택스님이 전언.
오전 7시30분 자신의 친딸인 불필스님과 10여명의 측근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퇴설암에 누워있던 성철스님은 갑자기 『이래선 안되겠다. 일어나고 싶다』고 해 이들이 부축해 일으켜 앉히자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내쉰뒤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입적했다는 것.
○…원택스님은 성철 큰 스님에 애제자들에게 마지막 내린 말이 『참선 잘하라』는 것이었다며 『가을 들어 이젠 갈때가 됐다는 말씀을 서너차례 하셨으나 세상에 알려진 것 보다는 건강상태가 좋으셔서 최소한 2∼3년은 더 사실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입적하셔셔 슬픔이 더 크다』고 흐느꼈다.
○…김영삼대통령은 5일 불교 조계종 이성철 종정의 입적에 대해 『우리나라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이신 이성철 큰 스님의 입적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는 조전을 보냈다.
김수환추기경은 4일 오후 성철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조전을 해인사로 보냈다.
○…성철스님의 입적이 공교롭게도 6백년간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 있던 팔만대장경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계로 3일 처음 서울 나들이를 떠난뒤 발생,조문 온 신도들 사이에선 팔만대장경 이운과 큰 스님의 열반에 무슨 연관이 있는게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나돌기도.
이들은 『성물을 너무 소홀히 취급했다』 『경판을 해인사 경내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잘못』이라며 팔만대장경 이송에 아쉬움을 표시.<해인사=허상천·김선옥기자>
◎7일장 치른뒤 10일 다비식 봉행
4일 입적한 성철스님의 장례식은 오는 10일 오전 11시 해인사 보경당앞에서 조계종단장으로 봉행될 예정이다.<관계기사 13면>
불가에서는 스님의 장례식을 법력에 따라 3,5,7일장 가운데 한가지로 치르는데 성철스님의 7일장은 60년대초 통합종단 출범이후 처음 치러지는 큰 의식이다.
그만큼 성철스님의 법력이 위대했음을 말해준다.
스님의 법구는 문상객들의 조문을 위해 장례식전까지는 해인사의 큰방에 마련된 빈소에 모셔진다.
불교전통 예식설차에 따라 장례식이 끝나면 스님의 법구는 이날 오후 2시 연화대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옮겨져 다비식을 치르게 된다.
다비장에는 참나무장작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제단을 만들고 제단둘레에도 화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장작을 둘러친다.
제단에 법구가 모셔지면 독경이 울퍼지는가운데 거화(제단에 불을 붙이는 절차)로 다비가 시작된다.
다비시간은 보통 10∼12시간이 걸리며 장작이 타 불이 꺼지면 유골을 추스려서 사리를 수습하는 습골절차를 거친다.
수습된 사리는 부도나 사리탑을 세우기 전까지 사리용기에 모셔져 보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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