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충남방적」 개연성 높다/회사공급 유용 주식투자 시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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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CD구입 핑계로 돈빼내 61억원 날려/증권사 직원과 짜고 가짜보관증 제출
충남방적 공금유용사건은 대기업체와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가명·차명계좌를 이용한 변칙·파행적인 자금운용과 금융거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전격적으로 단행된 금융실명제가 직접적인 계가가 돼 터졌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잠복해 있는 유사한 결탁사례가 시간이 흐르면서 잇따라 표면화될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자살한 자금과장 구자원씨와 계장 장현기씨의 회사공금을 이용해 한밑천 잡으려는 무분별한 욕심에서 비롯됐다. 81년 1월에 입사한 구씨와 88년 1월에 입사한 장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회사내 자금통으로 상사들의 절대적인 신뢰속에 회사자금 운용업무를 맡아왔다.
회사측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와 회사채를 매입하도록 지시했으나 이들은 91년 8월부터 단기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주식투자의 유혹에 빠지면서 회사의 눈을 속이고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은 주가하락으로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기는 커녕 무려 61억원의 손실을 입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이 와중에서 올해 6월부터 무려 61억원 상당의 양도성 예금증서와 회사채를 회사 몰래 팔았고 심지어는 양도성 예금증서를 매입하겠다며 여섯차례에 걸쳐 무려 1백44억여원을 회사로부터 받아내고 눈가림용으로 증권사의 가짜보관증을 회사에 제출하는 대담한 수법까지 동원,결과적으로 2백여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금융관행에 익숙한 이들이 떳떳하지 못한 투자사실을 숨기기위해 1백개 가까운 가·차명계좌를 이용했음은 물론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금융실명제만 아니었다면 구씨 등의 회사공금을 이용한 위험한 불장난이 상당기간 노출되지 않고 계속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이 모두 기존의 거래실태를 점검하고 일선직원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제2의 충남방적 사건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하경기자>
◎허술한 「실명제그물」 노출/소문으로 나돈 변칙 실명전환 사실로
충남방직 직원들의 가·차명 예금 불법인출 사건은 실명제의 그물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두달동안의 실명전환 의무기간중 가명계좌의 96%가 실명전환을 하고 실명확인율도 80%에 이르자 정부는 『실명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있다』는 자체평가를 내렸었다.
시중에서는 그러나 변칙실명전환·확인에 관한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이번에 사실로 확인됐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명제 자체가 가명·차명의 금융관행이 만연된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시행됐던만큼 사건화되지 않았을뿐이지 이같은 일은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일어날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지적이다.
가·차명 계좌는 기본적으로 말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실명전환에 대한 저항도 심각할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2명의 직원 가운데 한명은 자살을,다른 한명은 해외도피를 택했다.
정부가 유도했던 본인명의의 실명전환은 끝끼지 이뤄지지 않았다. 실명제 실시 초기에 보완책이 거론됐던 까닭도 차명예금의 현실을 바로 보고 「과거를 묻는」 방식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긴급명령 위반이나 자살·해외도피로만 보지말고 현재의 실명제가 사실상 거의 모든 금융기관 종사자를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나오고 있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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