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뜻 확고…반대소리 “움찔”/선거법 개정시안 놓고 민자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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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실외면… 사문화될수도” 신중론 대두/“원칙엔 찬성” 여당 프리미엄 잃을 우려
국감의 와중에도 정치권은 정치관계법을 둘러싼 내홍을 앓고 있다. 발열의 원인은 정치판을 뒤집어 놓을 정치관계법 개정에 대한 여권 수뇌부의 확고한 의지와 이를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의원들의 현실적 이해간의 엄청난 괴리에 있다.
○법안 직접 챙겨
○…정치관계법의 개정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의지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의 되겠다』는 자신의 통치철학 바로 그것이기에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이 법안 개정작업을 현역 정치인이 아닌 청와대 참모에게 맡기고,직접 법안의 하나하나를 챙긴 것도 당간부를 포함한 현역 정치인들의 기득권에 대한 애착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고 한다.
이같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대통령의 참모들은 「확실한 처리」를 위해 이해당사자인 의원들과 각계 여론지도층을 상대로 개혁의지 전도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정치관계법의 개정은 공직자 재산공개와 실명제 실시에 이른 대통령의 「3대 개혁과제」로서 사실상 개혁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달리말해 재산공개로 기존의 정치구태를 징계하고,실명제를 통해 금권정치의 뿌리를 단절한뒤 구태의 재현을 영원히 봉쇄하기 위한 확실한 잠금장치로 마련한 것이 정치관계법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새법을 다음 선거인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엄격히 적용해 정치개혁을 착근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연좌제」 너무 심해
○…반면 이같은 분위기를 모르지 않는 민자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의지와 명분앞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시안의 내용에 대해 잔뜩 불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비판의 목소리를 못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원들이 겨우 내뱉는 의견은 『현실성이 없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당지도부에 보고된 정세분석위원회의 보고서는 『선거법 시안은 「깨끗한 정치구현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앞세운채 『그러나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사문화되거나 음성적인 불법활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최종 결정때까지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겠다』고 건의했다.
중진인 박모의원은 『법이란 모름지기 만드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지켜지는게 중요하다』고 점잖게 논평하지만 속마음은 무척 불편한듯 긴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초선의 이모의원은 『돈 적게 쓰자는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연좌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며 「연좌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이어 『새 법에 따라 선거를 치르게 되면 선거가 완전히 난장판이 된다. 연좌제 실시에 따라 선거운동원의 불법운동에 대한 고소·고발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후보는 아무 죄도 없이 힘들여 얻은 금배지를 내놓아야 하는 억울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다』며 벌써부터 걱정한다.
농촌출신의 다른 한 의원은 보다 노골적으로 『이런 식의 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차라리 선거하지 말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한다. 『유급선거운동원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러면 선거운동은 누가 하느냐. 농촌에서는 일단 주고도 사람 구하기가 힘든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또 『어차피 선거를 치르자면 돈은 들 수 밖에 없다. 새법이 시행된다면 정치자금은 더욱 음성적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의원뜻 반영안돼
○…법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결같은 주장의 이면에는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고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걸린 선거법안을 일방적으로 만들었다』라는 불만도 깔려있다.
당연히 관심은 「정치판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런 식의 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김영삼대통령의 의중에 집중된다.
김모의원은 『선거법의 시안을 보면 대통령은 이미 여당이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정한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여당의 프리미엄이던 돈과 조직을 모두 없애버린 만큼 누가 굳이 여당 의원으로 출마하려고 하겠느냐. 또 여당으로 출마한다해도 야당이나 무소속보다 특별히 나을게 없으니 여당이 의석의 절반을 확보한다는 것도 어려워졌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지금까지처럼 일사불란한 여당도 없어지고,과반수 의석을 점유해온 거대여당도 없어질 것이란 해석이다. 일부 의원들은 15대 총선 때부터 여당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지면서 대통령이 원치 않는 조기 레임덕 현상이 심각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위험성을 모를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추론의 결론은 「자연스런 정계개편」설로 이어진다. 돈 안드는 선거를 엄격히 치를 경우 지금까지 금권선거의 관행에 익숙해온 현역 의원들이 대거 떨어질 것이며,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을 경우 정치판은 정책이나 정파에 따라 이합집산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자신들의 이해와 관련해 불안해하는 의원들도 통합선거법 시안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는데는 물론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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