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여성 능력있으면 승진의 길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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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거리의 옷차림만이 아니라 빌딩내 사무실 직원들의 역할에서도 남녀 구분이 없는,이른바「유니섹스」현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사회 각계분야에 꾸준히 진출했음에도 불구,기업체에서는「사무실의 꽃」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인력들이 이제는 그 장벽을 뛰어넘어 남자와 동등한,때로는 더 월등한 발걸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퇴직」이라는 등식을 깨뜨리고 일반기업체의 과장.부장등 관리직까지 승승장구하는가 하면 가장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은행에서도 이젠 여성은행장이 등장할 가능성까지 엿보이고 있다.
영역별로도 지금까지「복잡한 업무」「육체적 기능」「대인관계」「야간근무」등을 이유로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직종들까지「여성자원병」들에 의해 하나씩 점령당하고 있다.
제일은행 국제금융실의 崔知榮(26).金貞台(26)씨는 이 은행에선 첫 탄생한 여성 외환딜러.이 직종 설립때부터 자연스레 남자들만이 맡아왔고,또 모두들 이를 당연시 여기던때 이들 신세대여성들은『여자라고 못할 것 있느냐』며 딜러職에 지원했고 은행측도「혹시나」하는 마음에 이를 받아들였다.
「나인 투 파이브」(9시 정시출근,5시 정시퇴근)의 편한 업무를 제쳐두고 24시간 긴장상태에서 각종 전광판 수치를 지켜보며 국제금융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이들은 美國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연수받는등 하드트레이닝을 감수했다.
崔씨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국제자금시장동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金씨는 외화자금을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차입하거나운용하는 일을 각각 맡고 있는데 이제는 베테랑이란 평을 듣는다. 崔씨는『소속집단의 주변에서 핵심으로 들어가고픈 욕망이 강했고,또 힘들지만 전문직종으로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이 일을 선택했다』며『하지만 여성이라는 생각을 제쳐두고 직장인이라는 생각만을 갖고 자리잡기까지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노력이 요구됐다』고 말했다.
또 金씨는『은행일에 열심히 매달리면 나중에 이사급까지는 오를수 있지않겠느냐』며 당찬 각오도 보이고 있다.
은행 지점장자리는 이미 12년전 조흥은행의 張都松씨(57)가최초로 올랐었는데 張씨는 최근 연수원장을 끝으로 퇴직,임원 선임 문턱에서 아깝게 물러섰다.현직 가운데 선두주자는 상업은행 영동출장소의 李必永소장(45).상업은행 창립 9 4년만에 처음으로 발탁된 여성출장소장이라 행내의 기대가 대단하다.
이외에도 한일은행 둔촌동 崔春子지점장(53),조흥은행 이화여대출장소鄭花子소장(52)등이 임원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기업쪽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여성 공채인력이 중심이 돼 있는데 현재 과장급까지 오르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三星그룹의 경우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과장인 金然珍씨(44.
現제일제당 홍보기획과장)를 비롯,吳春愛씨(44.삼성물산 북방팀과장).金銀河씨(41.삼성중공업홍보팀과장)등 83년 기혼 전문직 여사원 채용시 1기로 입사한 6명이 과장으로 있 고 84년부터 시작된 일반 대졸 여직원 공채생들을 중심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85년 일반 대졸 여직원 공채2기생 50명중에는 현재10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중 삼성전자 黃美貞과장,삼성시계전혜원과장,삼성경제연구소 張美花과장등 이 선두격이다.
삼성전자의 黃과장은『능력만 있으면 승진의 끝은 있을 수 없다』며 후배들에게는『자기일에 책임을 지는 정신이 조직생활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들이 전문직장인으로 정착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86년 입사한 大宇증권 영업1부 금융상품팀의 文惠貞대리(29)는 그동안 국제부에서 조사.기획업무를 맡는등 핵심부서를 두루 거쳤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회사측이 여자들에게 어떤 일을 맡겨줄지몰라 고심하는 눈치였습니다.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초기 1~2년간은 중요한 일을 맡지 못하고 겉돌기 일쑤였지요.다행히 여성공채가 늘면서 회사의 인식이나 평가도 변하기 시■ 해 이제는 남자직원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일을 맡고 처리하고 있지요.』 삼성전자의 黃과장도『처음 배치받았을때 상사가 굉장히 불안해 하더군요.한동안은 책임이 가벼운 업무만 자꾸 맡기는 거예요.그러다보니 경력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또 횡적으로 비슷한 직위의여성인력도 많지 않아 업무협조를 받는 것도 힘들었구요』라고 말했다. 직장내의 남녀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또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제도적 뒷받침이 되면서 여성의 입지는 한층올라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입지가 탄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은『직장에서 여자라고 힘든 일을 빼주려 할 기미가 보이면 먼저 그 일을 자원했다』는 상업은행 李必永소장의말처럼「나하나의 문제가 아닌 후배여성 전체의 문제」라는 의식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오늘도 뛰고 있는 것이다.
〈李孝浚.南潤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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