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 가속화/독 「마」 조약 합헌결정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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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1년말 조인후 12개국 비준완료/통화동맹등 절차문제 아직 난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12일 유럽동맹조약(일명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합헌이라고 판결,이 조약에 대한 유럽공동체(EC) 12개국의 비준절차가 모두 끝났다. 독일 헌재는 이날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관련한 5건의 위헌소송중 4건은 소송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나머지 1건도 「이유없다」고 기각하면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민주주의의 이념에 부합돼 기본법(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지난 91년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개최된 EC정상회담에서 합의되고 92년 2월 EC 12개국에 의해 서명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오는 11월1일 발효된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은 이미 92년 12월 연방하원이 압도적 다수로 마스트리히트조약을 비준했고 이어 연방상원도 만장일치로 이를 비준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덴마크가 국민투표에서 이를 거부했다가 올해 다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가까스로 비준하고,프랑스에서도 51%의 찬성으로 간신히 비준되는 등 주변국에서 통합반대론이 거세게 일자 독일내 통합반대론자들도 이를 위헌이라며 헌재에 소송을 제기,독일은 비준절차를 끝낼 수 없었다. 전 EC임원이었던 만프레트 부르너와 유럽의회소속 녹색당의원 4명 등 위헌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이 조약대로 유럽이 통합될 경우 독일은 「커피속의 설탕처럼」 독립국으로서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며 이는 국가의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독일도 이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전후 독일에서 가장 의미있는 결정으로 평가되는 이날 헌재의 판결에는 독일인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만약 헌재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 들여 국민투표실시를 결정했다면 지금까지의 유럽통합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등 유럽통합 자체가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날 헌재의 결정으로 이달말로 예정된 EC 임시정상회담은 프랑크푸르트가 유력시되는 유럽중앙은행 소재자를 결정하는 등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한 유럽통합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헌재는 이와 함께 「브뤼셀의 독재」를 염두에 둔 통합절차상의 민주화와 유럽의회의 강화를 주장,이는 EC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또한 통화동맹도 자동으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각회원국이 인플레(3.9%)·재정적자(GNP의 3%)·채무(GDP의 60%)·금리(11%) 등의 조건을 충족,안정기조가 유지돼야 도입되는 조건을 달고 있다. 현재 이 조건을 총족하고 있는 나라는 룩셈부르크 뿐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헌재는 언제라도 독일정부의 유럽통합 노력을 제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이날 독일 헌재의 결정으로 「유럽통합열차」는 일단 출발했다. 그러나 이 열차는 「기관사」인 EC집행부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님」인 회원국들의 상태를 봐가며 운행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독일 헌재는 「비상브레이크」 밟는 것은 물론 「독일손님」을 하차시킬 수도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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