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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유산 상속인 범위 줄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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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날인(捺印) 없는 유언장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은행 및 대학 간에 5백억원대 소송이 벌어졌다는 보도를 보고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방식과 유류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이번 재판에서 유족들이 패소해도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유언이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말하는 것으로 여겨 미리 유언서를 작성해 놓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번 사건이 유언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 같다.

유언이란 유언자가 생존 중이나 사후 자기 소유권을 자유롭게 처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유류분 제도는 유언에 의한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절대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민법은 1979년부터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민법에 정한 유언 방식은 자필증서.녹음증서.공정증서.비밀증서.구수증서 등 다섯 가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언서는 자필증서다. 이는 유언자가 유언 전문과 연월일.주소.성명을 자필하고 날인한다. 간편하기는 하지만 유언증서 유무를 사후에 판명하기 어려우며, 위조.변조의 위험이 따른다. 가장 확실한 것은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공증인의 조력을 받아야 해 다소 비용이 들지만 사후에 유언자의 의사가 확실히 보장될 수 있고 다툼을 예방할 수 있다.

유류분이란 유산의 일정부분을 일정한 상속인이 반드시 취득하도록 한 것이다. 유류분제도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맞서 있다. 대표적인 반대 견해는 소유권의 중요한 기능인 재산처분의 자유를 제한해 거래의 안전을 해칠 염려가 있고, 상속인에게 일정한 재산을 보장함으로써 자손의 안일과 게으름을 조장하고 독립심을 이완시켜 사회.경제상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70년대 초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남편이 일생 동안 함께 모은 재산을 기생 소실과 사이에 태어난 3세 아이에게 전부 준다고 유언한 일이 있었다. 필자가 유류분제도 도입 운동을 편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오히려 부양가족을 거리에 내모는 셈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모 또는 배우자의 재산에 대해 최소한의 상속을 자손, 특히 미성년자 자녀 또는 잔존배우자에게 보장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가족의 생활보장, 나아가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현재의 유류분 제도가 지금 이 시대 상황과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민법은 상속인 중 직계비속.배우자.직계존속(부모).형제자매에 한정해 유류분권을 인정하고 있다. 유류분 비율은 직계비속.배우자는 각자의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각자의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정하고 있다.

지금은 농경시대가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형제들이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짓고 살지 않는다. 현대는 소가족 사회다. 민법상 부양의무도 형제자매 간에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만 지도록 하고 있다.

부모자식의 관계와 한참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독립해서 살아가는 형제자매에게까지 유류분권을 인정하는 것은 유언자의 재산처분권을 심히 제한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그릇된 이기주의를 심어주고, 가뜩이나 심한 우리 사회의 혈연주의의 병폐를 시대와 상관없이 지속되도록 조장할 우려도 없지 않다.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시키고 싶어도 유류분이 걸림돌이 된다면 공동체의식과 기부문화를 저해하는 간접 요인이 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유류분권은 부모.자식.배우자에 한정해 인정하도록 현행 민법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양정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