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달의소설>박상우 열대야,이상림 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우리는 언제나 소설에서 특별한 시선을 보고싶어 한다.색다른 목소리를 엿듣고 싶어한다.독특한 시선과 소리를 통해 인간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체험과 재인식의 기회를 마련하고 싶어한다.그런 기회란 많을수록 좋은 법인데 실상 그 기회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이 가을의 작단에 발표된 소설중에 박상우씨의『熱帶夜』(『문학과 사회』가을호)와 이상림씨의『圓』(『현대문학』9월호)은 비교적 우리의 초조감을 덜어주는 작품들이다.『스러지지 않는 빛』으로 등단한 이래 줄곧 낭만 적 열정을 보여온 박상우씨는『熱帶夜』에서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대화적 시선을 통해매우 독특한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화자의 진술을 빌리면 소설은『사물의,세계의,인식의,이성의,감성의 모든 중심축이 느닷없이 기울어질때 느껴지는 현기(眩氣),혹은 몽환경(夢幻境)』으로 읽힌다.정치의 시대였던 지난 연대에운동권이었던 주인공이 새로운 연대에 들어 느끼는 것은 온통 「탈진감」뿐이다.흔들리는 현실의 풍경에서 그는 거꾸로 물구나무선인간들의 모습을 목도한다.거기서 현기증을 느낀다.풍경과 소리가사라지고 또 되살아나곤하는 악순환 속에서 그는『어둠의 세계에다몸을 눕히고,영원히 그럴 것처 럼 조용히 눈을 감은』채 감각의해방을 시도한다.
독특한 소리 상징,뒤틀린 일탈 문장 속에서 감각이 살아난다.
단속음과 연속음 내지 공명음 사이에서,혹은 토막났거나 뚝 떨어진 단어들 사이의 여백에서 몸이 일어나고 욕망이 일어난다.「가무러지는 의식」속에서도 무의식은 질주한다.그 질주 와 몽중 보행을 통해 작가는 현실원칙에서 패배한 영혼을 쾌락원칙으로 승화시킨다.인간의,인간에 관한 억눌렸던 모든 것들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풀려나는 모습을,그 가능성을 작가는 열대야의 무더위 속에끈적끈적한 땀방울로 풀어내고 있다.
이상림씨는 올해 등단한 신인이다.신인답지 않은 차분함과 단정함이 눈에 띈다.『圓』은 한마디로 죽음을 통한 삶의 재성찰을 시도한 소설이다.그러니까 삶을 바라보는 죽음의 시선이 돋보이는작품인 것이다.이 경우 소설을 읽는 독자의 삶의 시선은 죽음의시선을 은밀히훔쳐보며 삶의 시선을 재정립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신의 사십구재에 참석한 가족과 친지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망자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망자가 바라본 삶의 풍경은 매우 일상적이다.이를 보면서 망자인 화자는『살아있는 것들에대한 이유없는 노여움』을 느낀다.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삶을 긍정하자는 태도는 아니다.이미 삶의 몸은 운명의 천리에 의해 부정되었다.그래서 몸은 다시 일으킬수 없다하여 작가는 의식을 어렵사리 일으키고자 한다.그 의식으로 삶과 죽음을 하나의 구경속에서 통찰하며 표제의 암시처럼「圓融 自在」의 세계를 지향하고자한다.그만큼 형이상학적인 태도를 지닌 작품이지만 소설의 실재는태도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각각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에서 출발한 전혀 다른 소설이지만 두 소설 공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삶을 성찰하는 새로운 인식론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태도면에서는 일치한다.
무의식을 통해 의식은 새롭게 트이고,죽음을 통해 삶은 새롭게 열린다. 우찬제〈건양대 교수.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