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노우캣' 백수의 혼자놀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나는 3월을 정말 싫어했다. 개학, 새 출발, 입학, 새로운 시작…이런 단어들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2001년 3월 4일)

새로운 세상을 향해 움츠러드는 것이 어디 이 말의 주인공뿐일까. 이처럼 소심한 젊은 백수를 의인화한 고양이의 일상을 그려 인터넷에서 인기를 누려온 권윤주(29)씨의 만화'스노우캣 다이어리' 제2권(호미.1만5천원)이 나왔다.

인터넷(www.snowcat.co.kr)에서는 2004년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굳이 보폭을 맞추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처럼 2001년에 연재했던 분량을 실었다.

알려진 대로 스노우캣의 장기는 방안에서 '혼자 놀기'. 일단 외출할 때는 각종 볼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느라 집에 오면 녹초가 돼 버린다. 안 그래도 체력이 약해 곧잘 침대에 널부러지는 모습 역시 만화의 소재다.

'날 때부터 침대에 붙어있는 애 같다'는 말을 들은 다음날의 만화는 작은 침대에 누워있던 스노우캣이 침대와 함께 자라는 모습이다. 방구석에 기대어 앉은 또 다른 날의 스노우캣의 모습에는 세 줄의 글이 곁들여진다. '청소하기 귀찮아서 어지르지도 않는다/치우기 귀찮아서 밥도 굶는다/이것이 바로 귀차니즘!'이라는 것이다.

'귀찮다'에 주의나 사상을 뜻하는 영어접미사'ism'을 붙여 작가가 만들어낸 '귀차니즘'은 젊은 백수들의 행태를 요약하는 신조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물론 귀차니즘에 시비거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앞치마와 슬리퍼로만 등장하는 인물의 목소리는 "넌 그렇게 만사가 귀찮아서 어떻게 살래? 차라리 나가 죽어라"고 직설화법을 던진다.

스노우캣은 이런 시비가 '귀차니즘에 대한 매우 진부한 공격'이라고 응수하면서도 정작 귀차니즘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은 언제일지 모를 '다음'으로 미뤄둔다. 설명조차 귀찮은 것이다.

그러나 스노우캣을 백수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백수이기에 가능한 여유는 영화나 음악에 대한 스노우캣의 심미안으로, 일상에서 떠오른 상념에 대한 깊은 탐구로 발전한다.

이런 매력이 없다면 1997년 인터넷에 '쿨캣'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누리는 인기를 설명하기 힘들다. 귀차니즘의 본령과는 사뭇 다르게 작가는 일기를 쓰듯 하루도 빠짐없이 새 만화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