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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내다보고 「나라일」 한다(선진국 무엇이 다른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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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끊임없는 생존경쟁… 안변하면 쇠망” 인식/교육­통신등 「무형자산」에 엄청난 투자/첨단도시·신항구등 「세계 초일류」 질주
지난 6일 영종도 신공항 건설을 또 다시 늦춘다는 한국정부의 결정이 내려진후 일본 규슈(구주)의 한 지방 신문은 그 사실을 주요 기사로 보도한 일이 있었다.
한국의 신공항 건설 공기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규슈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후쿠오카(복강)는 91년 3월에 발표된 텔리포트(Teleport) 계획에 따라 아시아지역의 국제 물류중심지로 항구를 개발한다는 복합적인 대규모 투자를 진행시켜오고 있다.
이 계획은 최근 일본의 불경기로 추진이 원활하지 않다. 그러나 초기의 심각한 재원부족에도 불구하고 30년전부터 포트아일랜드·로코아일랜드 등 2개의 인공섬을 만들어 고베(신호)를 물동량 세계 최대의 항구로 키워낸 나라가 일본이다.
이런 점을 생각할때 우리가 신공항 아니라 신항구를 지어낸다 하더라도 「지각건설」을 한다면 앞으로 과연 「깨어나는 중국」과 관련,동아시아 물류기지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활기 되찾는 영국
유럽의 중심국중 가장 노쇠한 나라는 영국이다.
그러나 영국 곳곳에서 「거듭나기」(Regeneration)를 위한 대규모 기초투자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언제 영국이 또 다시 영 브리튼(Young Britain)으로 젊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있다.
예컨대 산업혁명 초기부터 석탄·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던 곳의 하나였던 웨일스의 경우 70년대 들어 브리티시 스틸(British Steel)이 문을 닫으면서 대량실업과 함께 황폐한 검은 대지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웨일스에 가보면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푸른 언덕이 곳곳에 펼쳐져 있고 일본 소니사의 유럽지역 본부를 비롯해 공해없는 많은 외국 기업들이 유치되어 있다. 변해도 철저히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신은 66년부터 지금까지 약 30년동안 꾸준히 웨일스가 계속해오고 있는 대규모 대지개조(Land Reclamation) 투자가 그 기초가 되었다.
여느 재개발사업과는 차원이 다른 이같은 땅에 대한 기초투자로 지금까지 웨일스는 1만2천㏊의 땅을 새로 태어나게 했고,앞으로도 6천㏊의 땅을 다시 일굴 계획이다. 결국 제주도(1만8천2백㏊)만한 땅을 통째로 바꾸어놓는 셈이다.
이같은 선진국들의 왕성하고 끊임없는 기초투자는 그들의 소득이 높고 재정이 견실해서가 아니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삶의 질」을 생각하고 나라의 장래와 후세를 내다보며 주변 국가와의 냉엄한 경쟁을 직시하는 길고 성숙한 안목이야말로 그들이 일으키는 국가 기초투자의 가장 큰 밑천이다.
○재원 아끼지 않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국가도 끊임없이 그 기초를 새로 쌓아올려야 한다.
한때 한나라를 흥하게 했던 참신하고 굳건했던 유형·무형의 틀이 어느새 낡아빠져 충치처럼 흔들리고 마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분단의 잿더미 위에서 불과 40여년만에 급하게 쌓아올린 「압축성장」이 벌써 「성장의 병목」에 걸려버리고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큰 줄기만 챙겨 본다면 우리는 그간 60년대 초의 「가난을 벗자」는 동기부여,70년대초의 경부고속도로 개통,80년대초의 전신망 확충 등 척박하기 그지없는 기초투자로 지금껏 잘도 버텨온 셈이다.
반면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거치며 많은 축척(Stock)을 하고 우리를 훨씬 앞서간 선진국들은 비록 오늘날 시막한 경기침체·고실업·환율재편 등의 골치아픈 문제(Flow)들을 안고 있기는 하나 또 다시 새로운 유형·무형의 국가기초를 쌓아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를 진정으로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직 병목단계에 이르지도 않은 저임금·저개발·저소득 국가들이 우리를 뒤따라 온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선진국들의 왕성한 기초투자가 점점 더 우리를 따돌려 「2차대전 이후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는 가설을 한국이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도시 국가에 지나지 않지만 싱가포르는 중국 소주에 제2의 싱가포르를 건설한다는 계획의 하나로 「중국말을 배우자」(Speak Mandarin Campaign)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처럼 언어교육과 같은 무형의 기초까지를 생각하는 싱가포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싱가포르 제1의 인프라는 영어구사 능력」이라는 말을 들어왔고,지금도 세계 최대수준의 컨테이너항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는 2000년까지 컨테이너 처리능력 세계 1위(연간 5천만TEU)를 목표로 착착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일본이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이미 산업사회의 「노년기」에 들어있다고 할 유럽 각국이 일으키고 있는 유무형의 국가기초 투자 또한,아직 「장년기」에도 제대로 들지못한 우리의 척박한 투자와 비교할때 무서운 유럽의 저력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로 정치적 갈등을 겪고있기는 하나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는 근본적으로 미국·일본 등에 대응해 유럽의 경쟁력(European Competiveness)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 이해의 산물이다. 따라서 유럽 각국이 때로는 경쟁적으로 때로는 힘을 합쳐 일으키고 있는 기초투자가 언제 또 다시 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가져다 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프랑스가 13년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앞서 구축해온 컴퓨터 통신망(Minitel,92년 기준 6백30만 회선 보급,전 가구의 22%가 사용)과 ISDN(디지틀방식 정보통신망)은 아마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무형의 기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예컨대 우루과이라운드의 시대에 농업중심에서 첨단산업 중심으로 변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 8개 지역이 힘을 합쳐 구성한 지역 경제권 미디피레네(Midi Pyrenees)는 공간상의 거리를 뛰어넘는 ISDN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강하고도 가깝게 결속되어 있다.
현대판 「축지테크놀로지」랄 수 있는 기초투자가 이미 든든히 받치고 있는 아름답고 인심 좋은 미디피레네가 벌써 2백]4개의 외국기업을 유치했고,이 지역의 중심지인 툴루즈(Toulouse)시에 유럽 8개국이 미국의 보잉사와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친 에어버스사의 본부가 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1세와 3세때의 장래를 내다본 도시계획 덕에 파리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3천5백㎞의 하수 터널을 지하에 깔아놓고 하루 1백20만입방m의 물을 처리하며 도시의 물청소를 하고있다. 「향수의 도시」를 받치는 「시궁창 인프라」는 파리 시민들이 조상들을 잘 둔 덕인 것이다.
○독일의 저력 실감
통일이후 구 동독 지역의 인프라를 새로 놓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독일의 저력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베를린시는 이미 고속도로를 포함,도시 교통의 순환을 위한 종합개발에 착수했는가 하면,함부르크시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로테르담항 등 이웃나라의 대항들을 제치고 유럽무역의 중심지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 복합적인 항구 확장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미 클린턴 정부의 「이론적 기반」인 『국가의 역할(The Work of Nation)』의 저자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장관이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훈련」이야말로 다국적 기업시대의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국가의 기초투자가 무엇인지를 또 다른 의미로 깨닫게 해준다. 일본 호소카와내각은 최근 불황 극복을 위해 또 다시 1조엔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EC는 유럽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통·통신 등에서의 거미줄 같은 범유럽망으로 유럽을 묶는 계획의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유무형 기초투자는 이미 도시국가(Garden City)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있다. 미국은 벌써 다국적 기업시대를 내다보는 국가의 기초투자를 생각하고 있다.
후손들을 위한 이같은 국가의 기초투자를 사정바람에 휩쓸려 있는 우리의 정치인들은 과연 얼마나 염두에 두고있는가.<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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