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의 명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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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보다 13.7%가 늘어난 내년도 정부예산안이 확정됐다. 돈 쓸 곳을 쳐다보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세금 거둘 일을 생각하면 꽤 부담스러운 규모다.
세수추계의 근거가 되는 내년 경제전망은 예산안 실무작업을 시작할 때보다 한층 더 어두워졌다. 따라서 작년에는 금년으로 이어질 세수결손을 내년에도 반복된다고 봐야 옳다. 실명제 효과로 얼마간의 세원확충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이로 인한 세수추가분은 경기가 나빠 줄어들 세금액에 크게 못미칠 것이다.
이 때문에 내년도 예산안이 겉으로는 「세입내 세출」의 원칙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적자재정이 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다 실명제 충격을 줄이려고 금년 하반기에 돈을 마구 풀어넣은 터라 내년에는 통화와 재정의 양면으로부터 물가상승 압력이 한꺼번에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예산안은 김영삼정부의 첫번째 예산안이라는 점에서 부문별 예산배정의 우선순위는 현 정부의 국정의지를 읽게하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이 중소기업 육성지원의 「획기적」 확대다. 이 부문의 예산은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증액의 당위성은 쉽게 수긍이 가지만 지원규모가 커질수록 지원방법의 효율성 문제를 더 깊이 따져봐야 한다. 지금의 지원체제가 과연 자생력 배양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부실과 건실기업을 가리지 않고 일시적 어려움을 무작정 덜어주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인지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세출규모 면에서 으뜸가는 사업은 역시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이다. 내년 예산은 금년보다 20% 이상 불어난 총사업비가 5조원을 넘어섰다. 이와함께 과학기술진흥·농어촌구조 개선·교육개선·국민복지·지역발전·도시서민 지원 등의 중점분야 사업비를 큰 폭으로 늘린데 비해 인건비·방위비 등 경직성 비목의 증액을 최대한 억제한 것은 평가받을만한 일이다.
다만 바로 이 때문에 공무원 처우개선이 미흡한 수준에 그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년의 공무원 봉급인상률은 기본급 기준으로 6.2%로 정해졌다. 금년의 동결로 해걸이를 하게된 마당에 이를 두고 넉넉한 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무원 봉급수준은 국영기업체의 87%에 불과하다. 민간기업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져 65%에 머문다.
재원염출이 어렵다 하더라도 공무원의 사기저하가 걱정스럽다. 처우의 허술함이 인사적체와 겹쳐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더구나 공직사회의 비리척결이 강조되는 개혁시대에는 이 문제를 너무 오래 방치해서는 안된다. 당장 봉급을 올리기가 어려우면 종합적인 복지차원의 별도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새해 예산안은 국회의 심의를 거치면서 한층 더 가다듬어지겠지만 자기 출신지역 사업만을 챙기려하는 의원들간의 경쟁은 반드시 지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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