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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열전>우디앨런,코메디 거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국내 극장가에서 단 한 편의 영화도 개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디 앨런의 이름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외신면을 떠들썩하게 연일 장식했던 자신의 의붓딸인 순이와의 스캔들 탓에 이뛰어난 코미디언은 졸지에 불명예스럽게 국내에서 유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지만 사생활로 한 작가를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미아 패로와의 소송의 와중에 만들어진 그의 신작『부부일기』는불미스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가 탁월한 영화작가임을 확인시켜주는 수작이다.실제의 순이사건을 연상시키는 두 쌍의 중년부부의 불만과 의심을 별다른 조작없이 거칠게 찍어 낸 이 영화는앨런과 패로의 실생활에서의 냉랭한 관계가 그대로 영화속에서 재현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끈다.
사랑이 이미 식어버린 부부의 지옥과 같은 살벌한 관계를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핸드헬드(들고찍기)로 찍은,다큐멘터리처럼흔들림이 심한 화면을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57세인 앨런은 50년대 중반 대학을 중퇴하고 인기 코미디언들의 대본작가로 연예계에 입문했다.남의 대본만을 써줄 것이 아니라 직접 해도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이 과정에서 얻은 그는 우리로 치면 만담가라 할만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나서서 어느정도 인정을 받는다.
69년 구제불능인 어느 범죄꾼에 대한 가짜 정신분석인『돈을 갖고 튀어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그는『바나나』『섹스의 모든것』『슬리퍼』등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신화를 재치 넘치게 패러디한 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명성을 다진다.소심 하고 겁많은 채플린의 전통을 이어받은 小人(littleman)을 주인공으로삼아 그가 벌이는 소동을 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들은 거의 무정부주의적이라 할만큼 풍자 감각이 빛난다.
그러나 그가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만들어진『애니 홀』부터다.유대인 코미디언이 벌이는 연애행각을 경쾌하게 그린 이 영화는 앨런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의 영예를 안겨주는데 그가 시상식엔 참석하지 않고 뉴욕의 재즈 클럽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 영화에서 확연히 드러나다시피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그가 뉴욕에서 성장한 유대계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유대인으로서의 피해의식,지식인다운 과대망상증과 신경쇠약,뉴욕에 대한 광적인 애정등은 그의 후기작품 에서 거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티브들이다.
또 하나 작가로서 그의 특징중 지적해야할 것은 그가 마르크스브러더스.험프리 보가트를 언급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 대중문화의 전통에 집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럽의 예술영화적인 전통에 대해 대단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특 히 잉그마르 베리만에 대한 그의 애정은 거의 영화마다 드러날 정도로 대단하다.베리만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초월적인 불안에 그는 깊이 매료되어 있다(가장 세속화된 자본주의 문명사회인 미국에서 이런 초월성이 가능할리 없다는 것을 그는 사 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말하자면 이런 문화적 어긋남이 그의 영화를 움직이는 추동력인지도 모른다).
80년대 이후 확고히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한 그는 할리우드의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적은 예산의 영화를 거의 1년에 2편꼴로만들면서 꾸준히 팬들을 늘려 나간다.『카이로의 진홍장미』『젤리그』『한나와 그자매들』『범죄와 비행』등 그의 80년대 이후 작품들은 작가로서의 완숙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미국영화로는 유례없이 영화매체에 대한 세련된 자의식을 보여준다.
신작『부부일기』는 앨런이 예전의 안정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사생활에서 패로와의 파트너십을 청산한 그는 영화에 있어서도 변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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