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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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낯선 땅,낯선 사람(52)저녁도 거른 채누워있던 명국은 하나 둘 인부들이 들어오고 방에 불이 켜지자 벽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 어디 아프신가?』 누운 채 다만 고개를 끄덕이는 명국을 두고 다른 인부가 말했다.
『말 시키지 말아.어디 편찮으신가 보더라.』 저녁을 끝낸 덕호가 명국을 찾아온건 또 얼마가 지나서였다.손에 물그릇을 들고있었다. 『젊은 사람이 뭐 이래.누워서.』 옆에 와 앉으며 덕호가 명국의 이마를 짚어본다.
『어이구.열이 꽤 있는데… 그렇다고 끼니도 넘기면서 누워만 있으면 어떻게 한다.봐라,내 주방에 가서 누룽밥이라도 얻어다 줄까.』 『생각 없어.』 『누군 입맛 있어서 먹니.목구멍이 포도청이라,명 보전하겠다고 먹는 거지.』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가서 네 볼일이나 봐라.』 『내가 뭐 볼일이 있나.헐 일이라고는 속옷 까뒤집어 이 잡는 거 밖에 없는데,그 재미도 어제 다잡아서 더 잡을 놈도 없어.』 『귀찮게 이 원수는 왜 와서 이러나.』 중얼거리면서 명국이 일어나 앉았다.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벽에 등을 기댔다.어금니를 힘주어 다무는데 목에 힘줄이 솟는다.덕호가 들어올 때 가지고 온 물그릇을 그에게 내밀었다.
『더운 물인데 좀 마셔 봐라.땀을 다 흘리는 걸 보니 너도 많이 허해졌나 부다.』 덕호가 내밀어주는 물그릇을 받아 명국은후룩후룩 불어가며 마셨다.그릇을 내려놓으며 명국이 콧등의 땀을닦았다. 『아이구,그거라도 마시니 좀 살 거 같다.할일 없으면가서 왜말이라도 배우든가.그것도 또 며칠 됐다고 때려치웠냐?』저녁을 먹고 나서 한쪽 방에 모여 일본말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한때 거기에 열심이던 덕호가 어쩐지 요즈음 거기에 얼굴을내밀지 않는게 의아했던 명국이었다.
『이제 와서 글을 배워 뭐에 쓰게.다 헛짓이야.』 『연필 꽁댕이에 침 묻혀가면서 아이우에오 쓸 때는 언제구?』 『처량한 생각이 들어서.글공부가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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