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치수배자들 짧은 모자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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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아들놈 수배가 풀려 얼굴이나 실컷 볼수있을것 같았는데….』 28일 오후3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4층.6共시절 국가보안법등을 위반한 혐의로 수년간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부모님들께 안부전화 한 통화도 제대로 못한 정치수배자15명이 경찰의 눈을 피해 어머니들을 만나는「상봉의 자리」가 마련됐 다.
『제 어머니는 이 자리에 오시지 못했습니다.수배기간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뵙지도 못했….』 林秀卿양 방북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5년동안 수배생활을 해온 鄭恩哲씨(29.89년 전대협정책의장)는 끝내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었다.
오랫동안의 수배기간중 사회로부터의 고립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는 이들 정치수배자들은 지난 9일부터 延大에 모여 정치수배해제를 촉구하며 농성을 해오던 중이었다.수배자들은 한결같이 길게는 5년,짧게는 2년간의「창살없는 감옥」생활동안 저지른 불효를 참회하며 아들에 대한 근심걱정으로 초췌한 어머니를 보면서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어디서 자는지,추우면 옷이나 제대로 입는지,끼니는 거르지 않고 먹는지 늘 근심걱정이지요.
살아도 사는게 아닙니다.』 수배자들의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내놓고 하지못했던 가슴앓이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 털어놓았다. 『술만 먹으면「우리 애가 무슨 죄를 졌기에 집에도 못오고 도망만 다니느냐」고 소리치던 애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재작년봄에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아들얼굴도 못보고 저세상으로 갔어요.』 曺正信씨(28.前전남대총학생회장.국가보안법 위반)는 전남화순에서 올라온 어머니(67)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떨구고 있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채 돌아서는 어머니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워보였다.
〈李相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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