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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부도」위기/중기 되살린 “우정”/완구생산업체 선진케이(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 회사 동기들 돈모아 빚갚아줘/사실 알려지자 도움손길 줄이어
한때 몸담았던 기업의 입사동기생들이 힘을 합쳐 부도직전에 몰린 중소기업체의 도산위기를 넘기게 한 후 금융실명제의 후유증까지도 무난히 수습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7년 봄 코오롱그룹에 장교출신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뒤 2년후 퇴사,서울 노원구 석관동에서 선진케이(주)라는 완구생산업체를 운영해 오던 박식우씨(33)는 지난 6일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사동기 회장인 오원선대리에게 급히 돈을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박씨는 한해 40여종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월평균 3천만∼5천만원의 매출을 올려 완구업계의 「신데렐라」로 등장했지만 무리한 확장을 한데다 올들어 미국·중국산 등 외국제품의 범람,교통사고에 의한 하청업체 사장의 죽음,자동화계획 지연 등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가계수표 1억원어치를 발행했던 박씨는 집을 팔고 신문배달까지 했으며 부인이 식당일을 하는 등 노력끝에 지난달까지 6천만원을 갚았으나 이번달 들어 한계에 부닥쳤다. 지난 12일 갚아야할 3백만원조차 구할길이 없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박씨의 사정이 알려지자 서울본사의 동기생 11명은 다투어 휴가비를 내거나 당장 돈이 없는 사람은 현금카드로 돈을 빌려 보태는 등 하루만에 4백70만원을 모았다. 회사에서 운영중인 설악산 휴양소에서 휴가중이던 4명은 연락을 받고 회사에 남아있는 동기생들에게 대신 보태줄것을 요청,일시일식으로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아진 돈으로 박씨는 지난 12일 3백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 큰힘은 이날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면서 나타났다.
『실명제 실시이후 자금시장이 경색돼 주변의 중소사업자들은 자금을 못 구해 난리였어요. 그런데 나는 동기생들이 도와준 것이 알려지자 그동안 「완구업체에 돈을 빌려주면 못받는다」며 외면하던 거래처 사람들이 「동기생이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이면 믿을만하다」며 오히려 돕기 시작하더군요.』 박씨는 실명제로 얼어붙은 사회에 아직도 온정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평생 땅 한평 팔지않던 사람까지 땅을 담보로 1천만원을 발려주는 등 여기저기서 손길을 내밀어줘 지난 20일에는 1천만원을 갚을수 있었고 곧 나머지 빚 3천만원에 대해서도 거의 돈을 마련했다는 것.
박씨는 『우리는 입사동기가 적어 친했던 것이 사실이나 처음 도움을 요청할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도와줄 줄은 기대하지 않았다』며 『이들의 마음을 잊지않고 꼭 성공해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기업을 키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오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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