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궁예의 「미완성 개혁」 그려|장편 『거꾸로 흐르는 강』 펴낸 소설가 강병석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작가 강병석씨 (46)가 장편 역사 소설 『거꾸로 흐르는 강』 (중앙일보사간)을 펴냈다.
전 3권 예정으로 2권까지 나온 이 작품은 후 고구려 건국자 궁예의 일대기를 다뤘다.
기존의 역사책들은 왕건에 의해 축출된 궁예를 한결같이 성격이 포악하고 의심이 많아 부인과 아들·신하들을 멋대로 주륙한 폭군으로 그려놓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흐르는 강』에서 강씨는 궁예를 미륵 사상의 상징으로 해석, 부정과 부패·타락의 만연으로 망조가 든 통일신라 말 난세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 일종의 메시아로 부각시키고 있다.
『백성들을 착취하는 맹금과도 같은 왕족과 귀족들을 모두 없애고 새 세상을 열어보자는 것이 궁예의 주장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다 똑같다는 사민평등 사상이지요. 이 평등 사상은 또 내세불인 미륵의 성불로 태평시대가 열린다고 믿어 그 안에 자연스럽게 사회 개혁 사상을 지니고 있던 당시 민중의 미륵 신앙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궁예는 일찍이 출가해 「선종」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개국 후에는 미륵불을 자칭하면서 자기의 두 아들을 청광보살·신광보살이라고 불렸다. 사서들은 이같은 궁예의 미륵 신앙을 혹세무민하는 요망한 짓거리로 폄하 하고 있으나 강씨는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궁예의 미륵 신앙은 오히려 태평성대를 향한 이념의 덩어리이며 극락은 저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 있다는 믿음을 걸고 썩은 세상을 뜯어 고쳐보자는 개혁 사상이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궁예의 못 이룬 개혁에의 꿈은 지금도 한탄강을 흐르며 철원 지방의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강씨는 열살 때 6·25의 격전으로 황무지하한 철원 지방을 개간하려는 부모를 따라 그곳으로 옮겼다. 그곳 토박이 노인들로부터 궁예 왕에 대한 이러저러한 전설을 들으며 성장한 강씨는 언젠가 그 이야기들을 꿰어 궁예의 한을 풀고 역사 위에 당당히 복권시키겠다는 꿈을 품어왔다. 그 꿈의 결실이 이번에 나온 장편『거꾸로 흐르는 강』이다. 신라 47대 헌안왕의 유복자로 태어난 궁예는 왕실의 암투로 애꾸가 되어 축출된 후 세달사에 출가, 선종이란 법명을 받았다. 진성여왕 때에 이르러 기근과 가렴주구 등으로 민심이 왕실로부터 등을 돌리자 전국 각지에서 견훤 등 40여명이 반란을 일으켜 크고 작은 군벌을 이룬다. 군벌 기훤과 양길에게 몸을 의탁하다 그들로부터 군사를 나누어 받아 철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던 궁예는 901년 마침내 후고구려 태봉국을 세운다. 골품 제도 아래에서 출세길이 막혔던 신라 육두품 세력들이 다수 그의 휘하로 망명해 온다.
그러나 왕건을 앞세운 이 망명 귀족 세력에 의해 궁예는 살해되고 만다.
『거꾸로 흐르는 강』의 기둥 줄거리다. 특히 그가 신나말 타락상의 일단을 보이기 위해 곳곳에 삽입해 넣은 각종 성 묘사는 이채롭기 그지없다.
『민중의 염원인 미륵 사상을 잠재운 뒤 귀족·평민·노예의 계급제가 엄존 하는 고려를 세운 이들은 궁예를 폭군으로 몰아 죽였습니다. 수구 세력에 좌절당한 개혁의 메시아 궁예를 복원하다 보니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더군요.』
81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86년 다시 동아일보 신춘 문예 당선으로 소설가가 된 강씨는 이 작품이 끝나면 「아주 절실한」 연대 소설을 하나 쓰겠다고 한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