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와 닿은 「정신대 상처」- S-TV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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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SBS-TV가 15일 8·15특집극으로 방영한 『소망』 (최현경 극본·문정수 연출)은 특집극치고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아 일견 범상한 드라마로 보인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극의 재미와 함께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착잡한 생각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정신대 위안부 문제라는 우리 현대사 중에서도 정서적으로 가장 민감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열여섯살 처녀로 정신대에 끌려갔던 숨은 사연을 간직한 이분희 할머니가 은퇴한 고위 공무원 김 노인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는 데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이 할머니는 일 잘하고 심성이 착하지만 일자 무식에 망나니 양아들을 둔, 불행한 역사의 희생자다. 반면 김 노인은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지만 호화 주택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역사의 수혜자다.
드라마는 이 할머니의 과거를 우연히 알게된 김 노인이 할머니의 한을 풀어줘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녀와 재혼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을 기본 뼈대로 하고 있다.
정신대 할머니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통 (불임과 육체적 고통, 악몽, 사회의 차가운 시선 등)을 드러내는 한편 그 고통을 한 주변 인물의 각성을 통해 보듬으며 사회·역사와 화해시키려 한다. 드라마에서는 김 노인이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관철하고 이 할머니의 양아들도 회개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어 그 화해가 만족스럽게 이뤄진다. 여기에 이 드라마의 치명적 (?) 결함이 있다. 은퇴 후에도 골프를 치고 손자와 함께 위성 TV로 일본 사극을 보는 노인이 정신대 여인의 한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해도 그녀의 한을 풀어주려고 그녀와 결혼을 결심, 자식과 불화도 마다 않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임에 틀림없다. 가진 자가 자발적 각성을 통해 화해의 주체로 나선다는 설정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순진하게까지 보인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이러한 결함 때문에 좌초해 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비현실적 이야기 구조를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치밀하게 극을 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뻔히 알면서도 그 결함에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연출자의 탄탄한 드라마작법과 출연자들의 뛰어난 연기, 특히 정신대 할머니로 나온 정혜선의 청승맞을 정도로 리얼한 열연 덕분에 극은 살아 있다. 재미·감동과 더불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성과 덕분에 극중 김 노인의 비현실적인 변신은 우리 현실의 「정당한 반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의 우리들이 정신대 피해자들을 받아들이고 화해토록 하는 구체적 작업을 해오지 않았는데, 드라마에 대해서만 그런 것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곽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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